선진국과 후진국을 비교해 보면, ‘교통 질서를 지키는 매너가 크게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됩니다. 오래 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차들이 주변에 없는데도 멈춤 신호에서 반드시 정차하고, 또한 아무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빨간불에도 차들이 한없이 서 있는 모습에 많이 놀랐었습니다. 지금은 한국도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파란 불은 지나가고, 아무도 없을 때에 노란불은 노련하게, 빨간 불은 빨리 지나가는 것으로 알고 살았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미국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오래 살면서 보니까 그게 아니었습니다. 한 번은 노란 불에 노련하게 지나가다가 숨어있던 경찰관에게 잡혔습니다. 저는 경찰관에게 look at me once, 한 번 봐 달라고 사정했지만 상대는 no soup- 매정했습니다. 벌점 2점과 함께 피눈물 나는 티켓값을 물게 되었을 때, 미국인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알고보니, 미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예의 바르고, 남을 배려하고, 준법 정신이 투철한 것이 아니라, 한 번 어기다 걸리면, 가슴 에이는 페널티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은 범칙금 두려워서만 법을 지키는 것일까요? 사실, 법은 주민들이 자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드는데, 그러면, 미국인들은 왜 이런 과중한 형벌을 자신들을 위해 만든 것일까요?
언젠가 어느 목사님의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오래 전, 스위스에 3년간 머문 적이 있었는데, 큰 도로 빨간 신호등에 자동차를 세우고 기다리다가, 아무도 없어서, 신호가 완전히 바뀌기 전에 일찍 출발했다고 합니다. 주변에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고, 한국에서는 그냥 평범한 일이었기 때문에 괜찮으리라 생각했는데, 도처에 카메라가 깔려 있었는지, 얼마 후 교통신호를 어긴 사진과 함께 무시무시한 벌칙금이 날라왔습니다. 당시에 가장 싼 벌칙금이 미국돈 200불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제한 속도 시속 40킬로에서, 60킬로로 달리다 잡히면, 벌칙금이 천불에 1개월 면허정지였습니다. 엄청난 벌칙금에 크게 놀랐지만, 그 목사님의 해석이 좋았습니다. 스위스에서 교통 법규를 어긴 사람에게 과중한 벌칙금을 물리는 이유는 교통 법규를 어기는 행동을 살인 행위라 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과속이나 교통신호를 어긴 운전자는 누군가를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무시무시한 벌칙금은, ‘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살리려는 마음’이었습니다. 과중한 형벌은, 하나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데서 온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요나 선지자는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의 말씀을 어기고 엉뚱한 다시스로 가다가 고래 뱃속에 떨어졌습니다. 오랫동안 그 말씀에 대해 질문이 있었습니다. 주의 말씀에 따라, ‘복음을 전하지 않은 일’이 고래뱃속에 들어갈 만큼 큰 형벌을 받을 죄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은 죄에 비해, 형벌이 너무 크고 무섭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조금 과도하게 보이는 형벌을 내린 까닭은, 단순히 하나님 말씀을 어겼기 때문이 아니라, ‘한 생명의 소중함을 깨우쳐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생명을 소홀히 여기는 마음과 태도는 반드시 고쳐져야 합니다. 과중한 형벌을 받아서라도 회개하며 품어야 할 마음이 복음전도, ‘생명 사랑하는 마음이요, 구령의 열정’인 것입니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대면 전도는 생각할 수도 없는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려고만 하면,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서 얼마든지, 예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오늘 주일 오후 8시에, 우리 뉴저지동산교회에서는 유튜브 채널로,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찬양전도집회를 진행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이 찬양집회를 지인들에게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전도할 수 있습니다. 형벌을 두려워함이 아니라, ‘늘 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모든 상황속에서, 주의 복음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샬롬. 2020.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