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비슷한 엄마들끼리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한 어머니가 자기 아들이 지난 학력고사에서 전교 일등을 놓쳐서 속상하다고 힘들어 했습니다. 그러자 바로 옆에 앉아있던 어머니가 ‘자기 애는 꼴등만 면하면 소원이 없겠다’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 때, 다른 엄마가 자기 애가 매일 학교는 안가고 집에서 게임만 한다면서, ‘꼴등이라도 학교만 갔으면 좋겠다’고 탄식했습니다. 또 다른 엄마는 학교는 안가도 집에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말하면서, 자기 아이는 지금 소년원에 있다고 한탄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엄마가 소년원에 있어도 건강하니 감사하지 않느냐고, 우리 아이는 지금 병원에 있다고 울기 시작합니다. 그 때, 마지막으로 아무 말없이 다른 엄마들의 말을 듣고만 있었던 한 엄마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은 아이가 살아 있잖아요. 우리 애는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답니다.” 그 말에, 모든 엄마들이 갑자기 다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는 내게 없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있는 것을 appreciate 하는 마음입니다. 다른 말로 자족하는 마음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원래 내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생각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고, 가지고 가지 못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실제로 아무것도 내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불평을 하거나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아이 있는 것이 당연하고, 말썽 안부리는 것이 당연, 게임안하고 학교가는 것이 당연하고, 학교에서 1등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그 모든 내용이 다 불평 불만이 됩니다. 그러나 아이가 내게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만도 감사하다 생각하면 갑자기 모든 것이 감사하게 됩니다. 원래 있었던 것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도 없었던 것이 생긴 것이기에 감사한 것입니다. 그리고 내게 있는 것들에 대해 깊이 감사하면,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이 ‘아름다운 나라’ 미국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 주일입니다. 감사하는 날을 국경일로 갖고 있는 나라는 아마 미국이 거의 유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1620년 9월 102명의 영국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북미 대륙에 이주합니다. 그리고 1620년 그해 겨울, 혹독한 추위에 그만 102명 중 절반 이상이 세상을 떠납니다. 생존자는 약 50명뿐이었고, 그들 중 다수는 지치고 건강이 쇠약해져 질병으로 신음했습니다. 그러나 따스한 봄날이 오자, 생존한 청교도들은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가꾸어 그 해 가을 기대 이상의 추수를 하게 됩니다. 그 첫 수확을 주님께 드리며 저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첫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렸습니다.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며 그들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희는 대서양을 건너와 많은 친구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립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처음부터 잃은 것에 대한 불만이나 원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현재 내게 주신 것들에 대한 감사로 지켜졌습니다. 성경은“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 50:23)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로 제사를 드린, 청교도들의 기도를 받으시고, 이 땅을 축복하시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복되고 아름다운 나라, 미국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감사하는 심령에 복을 내려, 그 개인과 가정과 그가 속한 공동체를 축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추수감사 주일, 내게 없는 것들이 아니라, 이미 있는 수많은 감사조건을 기억하며, 주님께 만만 감사를 드려, 행복한 삶을 풍성하게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22.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