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교회에 있다보면, 동산성경학교에서 공부하는 분들이 저녁 7시부터 오시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거의 2시간동안 진지하게 성경을 공부하고 돌아갑니다. 동산의 여러 탁월한 평신도사역자들이 인도하는 성경공부반인데, 늦은 시간까지 웃음꽃을 피우며 서로 받은 은혜를 나누며 공부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500년 전까지만 해도 교회에서 결코 볼 수 없었습니다.
신약성경시대 이후로 거의 1500년대 중세까지, 성도들은 성경을 접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까지 성경은 오직 라틴어로 쓰인 성경만 존재했었고, 문맹이 팽배한 시대상황속에서 성경은 특권층만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그러자, 천주교회내에서 성경을 접할 수도 없고, 성경을 읽을 수도 없는 대중들을 대상으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황당한 교리 교육이 횡행했습니다. 당시 교회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인간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여,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중세 면죄부 판매에 앞장섰던 천주교 수도사 테첼은 ‘금화를 넣을 수 있는 면죄부 상자’를 앞에 두고 만인에게 “금화가 면죄부 상자안에 떨어지는 소리가 크면 클수록 죽은 영혼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외쳤습니다. 성경의 실제 가르침이 뭔지 알 길이 없었던 중세 교인들은 사제들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그릇된 믿음으로 천주교회는 돈을 긁어 모아 크고도 웅장한 교회당을 지었고, 교황과 교회내 기득권자들의 배는 불러만 갔습니다. 이 모든 불의한 광경을 목도한 마틴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자신이 섬겼던 비텐베르크 성교회 정문에 ‘95개 논제’라는 대자보를 붙이며 토론을 통해 교회 문제를 공론화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이 논제는 구텐베르크 인쇄술과 맞물려 전 유럽으로 삽시간에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나가 마침내 종교개혁 운동으로 자리 매김하게 되었습니다.
교황권의 서슬이 대단해서 교회의 권위에 대항하면 가차없이 처단되는 마녀사냥이 만연했었던 시절에 독일의 일개 사제인 루터가 95개 논제를 교회당 정문에 붙인 행동은 죽음을 무릎쓴 용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용기는 ‘오직 성경’에서 왔습니다. 마틴루터는 성경을 통해, ‘죄인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로마서 1:17절) 가능하다는 깨우침을 받게 됩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에서 비롯됨을 확실히 붙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주어진 그 값비싼 은혜가 우리 인생을 성화의 길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경 말씀의 진리에 비추어 볼 때, 로마 카톨릭 교회의 행위 구원은 모두 거짓이요, 우매한 교인들을 호도하여 교회의 탐욕을 채우는 왜곡된 가르침임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루터가 사역했던 비텐베르크 교회당안에는 ‘설교대에 서서 한 손을 성경에 올려놓고 다른 한 손은 중앙을 가리키는’ 루터의 그림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루터의 손이 가리킨 곳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이 둘이 마틴루터 종교개혁의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올해는 마틴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참으로 뜻깊은 해입니다. 늘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을 가슴에 품고, ‘성경과 십자가 은혜’에 붙들려,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17.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