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왜 왔니’ 라는 어릴 때 놀이가 있었습니다. 여러 친구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서로 마주 선채로 한쪽팀에서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하고 노래 부르며 다른 팀을 향해 윽박지르듯 걸어가면, 다른 팀은, 뒷걸음질 치다가,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노래 부르면서 다시 상대를 압박하며 전진하면, 처음 팀이 그만큼 후퇴합니다. 그러면, 또, ‘무슨 꽃을 찾으로 왔느냐 왔느냐’ 노래하면서, 처음 팀이 다시 앞으로 전진하고, 마지막으로 ‘누구 꽃을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노래 부른 후에, 그 지목된 사람과,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진 사람은, 상대편 팀으로 넘어가는 그런 놀이입니다. 가위 바위 보에서 이겨서, 다른 팀 선수를 모두 데려오면 게임이 끝나게 됩니다.
어릴 때, 이런 저런 이유로,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았습니다. 그저 방문 이유에 상관없이 반가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친구야 놀자…’하고 친구가 문밖에서 부르면, 서로 심심하던 차에,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편지를 배달해 주는 집배원 아저씨의 방문도 기뻤습니다. 명절 때는, 그간 서로 바빠서 만나지 못했던 친척들의 반가운 얼굴도 보게 됩니다. 그러나, 평소에 친하지 않은 사람이 불쑥 찾아오면,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그 이유가 알고 싶어집니다. 왜냐하면 누군가 갑자기 찾아오는 것은 좋지 않은 소식일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학교 담임 선생님이, 말도없이 찾아오면, 대개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가 생긴 경우였습니다. 경찰이 찾아오는 것도 좋은 소식이 아닌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불청객도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오는 사람은 도둑이나 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보통 집에 대문과 초인종을 만들어 두어, 불청객의 방문을 일단 저지했습니다. 그리고 초인종을 누르면, 물었습니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그러면 상대는,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방문 이유’를 밝히고, 그러면 ‘무슨 꽃을 찾으러 왔는지’ 알아보고, 문을 열고 상대를 받아 들일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했습니다. 혹시라도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문을 벌컥 열고 받아들였다가는, 뭔가 소중한 내 것을 ‘가위 바위 보’로 빼앗길 수 있었기에, 매우 주의가 필요했습니다. 서로의 집을 방문할 때에는 그 방문 이유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지금부터 약 2천년 전, 하늘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우리 인생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너무나 뜻밖의 방문이라, 사람들은 어리둥절했습니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예수님을 보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든 첫번째 질문은, ‘하나님 왜 우리들에게 오셨습니까?’ 였습니다. 주님의 방문 목적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상대의 의도를 모르고 별 생각없이 문 열어 받아들였다가는, 자칫 큰 곤욕을 치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주님은, 애굽왕 바로와 한 판 승부를 겨루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방의 기쁨을 안겨주었던 모세와 크게 다르셨고, 골리앗 장군을 돌팔매질로 때려 눕혀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압제에서 구원한 다윗 왕과도 완전히 달랐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낸,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는 분명 왕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요, 우리의 구원자임에는 틀림없으나, 그 이전의 어떤 구원자와는 사뭇 다른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러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고자, 섬김의 종으로 자신의 목숨을 우리 죄의 대속제물로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자기 목숨을 대속 제물로 주시기 위해 섬기는 왕으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그 날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러 어린 나귀를 타시고 섬김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조금이라도 더 닮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23. 04.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