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창시자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인데,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깨달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불교에는 삶의 교훈을 담고 있는 인상적인 사자성어가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인생무상입니다. 인생무상이란, 한결같지 않아 모든 것이 헛되다, 덧없다는 뜻의 한자성어입니다. 인생은 한결같지 않다. 언제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좋은 시기가 있어도, 언젠가는 끝나고, 언젠가는 죽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늘 좋지 않고, 늘 나쁘지도 않고, 한결같지 않다는 말로 돌려 표현한 것입니다. 권세나 명예조차 한 순간일뿐 결국은 헛되고 덧없고 허무하며, 모든 끝은 죽음이라는 말입니다. 불교의 이런 가르침은 놀랍게도, 놀랍게도 구약성경 전도서의 말씀과 일치합니다. 전도서 기자는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이 다 헛되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인생은 누가 어떻게 살든 상관없이 오늘 죽으나, 백년 후에 죽으나, 아무런 의미없는 삶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생로병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똑같이 반복됩니다. 부모 슬하에서 태어나 시집 장가가고, 땀 흘려 일해서 자식들 키우고, 그리고 병들어 죽는 것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상관없이 모든 인생의 사는 모습은 다 똑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일하고 먹고 마시고 잠자고 다시 일어나 세수하고 일하고 먹고 마시고 잠자고…, 이런 삶의 반복입니다. 젊은 시절, 각자의 능력에 따라 서로 차이나게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이가 들면 누구나 인생은 다 똑같아집니다. 3-40대 젊을 때에야 서로 내가 제일이라고 으시댈 수 있지만, 50대부터는 외모가 서로 점점 비슷해집니다. 남자들은 아저씨, 여자들은 아줌마 몸매로 변하고, 얼굴도 둥글고 평평해집니다. 60대에는 아는 게 비슷해집니다. 자꾸 단어들이 떠오르지 않고, 사람 얼굴과 이름이 매치가 되지 않습니다. 지혜자나 우매자나 비슷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70대에는, 먹고 사는 것이 비슷해집니다. 진수 성찬도, 젊을 때처럼 몸이 받지 않아서, 많이 먹을 수 없고, 사는 공간도 넓으면 치울 생각이 아득해져서, 그저 손바닥 만한 공간이 만만하고 편안합니다. 80대에는 젊은 시절, 아무리 골프, 스키 건강 관리를 잘했어도, 건강이 엇비슷해집니다. 비행기 타는 것이 두려워지고, 어디 멀리가는 것이 생각만 해도 힘들어집니다. 운전하다가, 접촉 사고 나는 일이 잦아지면서, 결국 운전대를 놓게 됩니다. 90대에는 살아 계시나, 안 계시나 비슷해집니다. 그리고 죽으면, 모든 사람이 다 똑같아집니다. 모두가 일반인 죽음입니다. 공수래 공수거,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자기 몸뚱아리도 모두 놓고, 영혼만 훌훌 심판대 앞으로 떠나갑니다. 이렇게, 어차피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 것없이 모든 인생이 일반인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다면, 이 땅의 수고는 결국 헛되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은데,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어쩌면 오늘 죽으나 백년 후에 죽으나, 하나도 차이가 없다면, 무엇을 위해 기를 쓰고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생을 허무하게 하신 것은 역설적으로 인생의 참된 목적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입니다.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을 경외하는 삶을 뺀 인생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그가 어떻게 살든 상관없이, 그의 인생은 허무합니다. 영혼없는 짐승처럼, 먹고 마시고 잠자고, 반복하다가, 죽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살아도 짐승보다 하나도 나을 바 없는 허무한 인생길에서 주님을 예배하며 주의 영광을 위해 유의미한 인생 살 수 있도록 우리를 구원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샬롬. 2022.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