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envy’입니다. 그 의미는 ‘부러움, 혹은 선망’입니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시기’라는 말을, ‘남이 잘되는 것을 샘하고, 미워하는 마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시기’와 비슷한 단어인 ‘질투’는 ‘부부 사이나 사랑하는 이성 사이에서 상대되는 이성이 다른 이성을 좋아할 경우에 지나치게 시기함’입니다. ‘시기’와 ‘질투’에 대한 국어 사전적 의미가 약간 부정적이어서 그랬는지, 어릴 때부터 우리는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은 나쁘다고 배웠습니다. 찬양 가사에도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버리고 우리 서로 사랑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대신에 우리가 버려야 할 감정은 ‘미움, 다툼, 시기, 질투’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에서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no jealousy-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질투’는 분명 하나님의 백성들이 버려야 할 나쁜 감정인데, 성경은 놀랍게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을 ‘질투하시는 하나님’ (여호수아 24:19)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조선 시대에 칠거지악이라는 법이 있었습니다. 칠거지악은 유교적 질서가 강했던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양반 가정에서 이혼 사유로 적용된 기준이었는데, 칠거지악을 저지른 아내를 내치지 않으면 남편이 곤장 80대 형에 처해질 수도 있었기에, 어느 정도 강제력이 있는 법이었습니다. 칠거지악의 내용은, “시부모를 잘 섬기지 못하는 것, 아들을 낳지 못한 것, 문란하고 편벽한 것, 시기와 질투, 유전병, 시비나 비방이 많은 구설, 그리고 도벽”입니다. 칠거지악은 모두 아내에게만 적용되는 기준이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칠거지악에, ‘시기와 질투’가 있는 점입니다. 조선시대, 양반 가정에서 “남편에 대한 아내의 질투”는 그 아내를 내치지 않으면 남편이 곤장 80대를 맞을 수도 있는, ‘이혼 사유’가 충분히 될 만한 큰 범죄였습니다. 그러나, ‘질투’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대가 또 다른 이성을 좋아해도 아무런 질투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어쩌면 처음부터 상대에 대해 별 다른 감정이 없었다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랑하는 사이가 아닌 경우엔, 그 사람이 어떻게 살건 말건 ‘질투’같은 감정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가 내 남편이요, 내 아내로 한 몸이 되어 가족이 된 사랑의 관계에서는 달라집니다. 질투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보다 다른 대상을 더 사랑하고 좋아할 때, 나오는 자연스런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백년가약을 맺고, 서로를 바르고 진실하게 대하겠다고 말한 배우자가, 서로간에 지켜야 할 대의와 정조를 저버리고, 다른 이를 더 사랑하여 가정을 내팽개치고, 남편으로 혹은 아내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당하는 사람은 질투심으로 인해 큰 배신감과 분노, 좌절과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외도하는 배우자로 인해 질투를 느낀 사람이 죄인이 아니라, 배우자를 두고 그외의 다른 이성을 사랑하여, 상대에게 가슴 아픈 질투심을 갖게 했다면, 그것이야말로 곤장 80대를 맞아야 할, 가장 큰 범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우리 인생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을 무척 사랑하시어 예수 보혈로 우리와 언약을 맺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외의 다른 우상이나 세상 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그건 하나님을 질투하게 하는 죄를 범하는 일이 됩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이 문제가 아니라, 우상이나 세상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여,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질투하게 하는 인간이 나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하나님보다 사랑할 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극심한 질투심으로 인해 괴로워하시고 슬퍼하십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여, 주님의 마음을 질투하게 하는 모든 악한 행위를 버리고, 늘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여, 주님안에서 참된 평안과 행복을 누리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2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