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전 6:19절)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은, 무슨 상급이 아니더라도, 당연히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 보혈의 피로 죄씻음받아 언제라도 이 땅에서 눈을 감으면 천국에서 눈을 뜰 수 있는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내가 사는 것은 절대 내 자신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주업과 부업이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밥먹고 살기 위한 job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게 되면, 세상에 주업과 부업이 있다는 것을 홀연히 깨닫게 됩니다. 사도바울의 주업은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부업이 있었습니다. 장막 짓는 일, 오늘날로 말하자면 건축업입니다. 저는 자기 먹을 것을 자기 손으로 일해 벌면서, 절대로 주업을 잊지 않았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미항공우주국 Nasa를 방문했을 때, 바닥 청소를 하고 있던 환경 미화원을 발견했습니다. 콧노래를 부르며 바닥을 닦고 있었기에, 대통령이 물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즐겁습니까? 청소가 좋습니까?’ 그랬더니 그 청소부는 “대통령님, 저는 일개 청소부가 아닙니다. 인간을 달에 보내는 일을 지금 돕고 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주업과 부업을 이해하면, 행복해집니다. 내 모든 하는 일이 가치를 얻게 됩니다. 성경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주의 영광을 위해서, to complete the great commission- 대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청소, 비즈니스 혹은 그 어떤 일이든 하게 될 때에, 우리는 콧노래 부르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고달프고 비참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단지 내 하는 일이 힘들고 어렵기 때문이 아닙니다. 모든 일이 귀찮고 피곤하고, 맥 빠지는 것은 돈벌이가 시원치 않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그 모든 이유는 어쩌면 내 하는 일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내가 왜 사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지금은 한국에 돌아가신 우리 교회 성도님이 자신의 고달픈 삶을 호소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귀부인으로 살았는데, 어찌어찌하여 미국에 오게 되어, 밥벌이를 위해 네일가게에 취직했습니다. 기술이 없으니, 페디케어를 하게 되었는데, 미국 여성들의 발이 큰 사람은 정말 한국 남자발보다도 크다고 합니다. 그 발을 붙들고 하루 종일 일 하다보면, 자신의 신세가 처량해져서, 한량없이 울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이든지, 그 일의 목적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부끄러울 일도 없고, 하나도 힘들고 처량할 일도 없습니다. 구두 수선을 하든지, 청소를 하든지, 남의 발을 닦든지, 누가 왜 그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여러분들은 ‘잃어버린 영혼을 주님앞으로 인도하기 위해 돕는 일’을 하고 있다고 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슨 일을 하든지 콧노래를 부르며 할 수 있습니다. 찬양하면서, 기뻐하면서 할 수 있습니다. 2018년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콧노래를 부르며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 2018.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