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교회에도 와서 은혜로운 말씀을 전해 주신, 레오니드 킴목사님은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3세입니다. 어쩌다 한국 사람이 우즈베키스탄이라는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나라까지 가서 정착하게 되었을까요? 거기에는 놀라운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북한의 두만강변과 국경을 함께 하는 구소련 연해주 땅은 일제 시대때, 나라를 잃은 한인들이 많이 이주해서 살았던 곳입니다. 한인들은 1914년 연해주의 주도인 블라디보스톡에 광복군 정부를 수립하고, 조직적인 항일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난 가운데 중국과 불가침 조약을 맺은 러시아의 스탈린은 연해주에 살던 전체 한인들을 강제 이주시키는 결정을 합니다. 죄목은 연해주의 한인들이 일본과 내통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해 9월에서 10월 2차례에 걸쳐 연해주 한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실려 중앙 아시아로 옮겨졌습니다.
굶주림과 공포의 열차가 도착한 곳은 연해주에서 무려 6천킬로 떨어진 반 사막 지대인 카작스탄 알마티와 인근지역,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남부지역이었습니다. 총 17만명 이상이 강제 이주를 당했고, 척박한 땅에 아무 대책없이 버려진 한인들은 처음 2년간 약 만 2천명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강인한 생명력을 발휘해 구 소련 최고 모범집단을 일거내는 등 자립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3세 레오니드 킴목사님의 할아버지는 이렇게 강제 이주된 연해주 한인 중, 한 명이었던 것입니다. 레오니드 킴목사님의 모국어는 러시아말입니다.
킴목사님이 태어나서 성장할 때만 해도, 우즈베키스탄도 구소련 연방이었기에, 학교에서는 러시아 말을 가르쳤습니다. 러시아 말은 학교를 다닌 지식층이 사용하는 말이었습니다. 고려인 3세였기에 한국어는 말할 기회가 없어 거의 못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잊혀질 뻔했던 레오니드 킴 목사님이 자신을 찾게 된 것은, 우즈베키스탄 정착 후 50여년이 흐른 1990년대 초 어느 날, 미국에서 온 한인 선교사님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통해, 복음을 들었고, 자기의 뿌리를 다시 찾았고, 한인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이제 미국까지 오게 되셨습니다.
레오니드 킴목사님은 현재 뉴욕 브루클린에서 목회를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아직도 혼란스러워하십니다. 자신은 러시아 사람도 아니고, 우즈베키스탄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오래 전 할아버지때에 한국을 떠난 자신을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습니다. 만약 한국이 일본에 합병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다면, 레오니드 킴목사님은 영원이 국제 미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삼일절 감사 주일입니다. 지금부터 불과 70여년전만 해도 우리는 나라잃은 백성이었습니다. 가진 것을 빼앗겨 남의 땅에 피신해 살고, 그러다가 하루 아침에 말도 안되는 죄목에 걸려, 강제 이주 당해 척박한 환경속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고, 그 땅에서도 고려인 1세, 2세, 3세,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던 서글픈 과거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민족이 누구인지 알고, 자기 나라 땅을 한 뼘이라도 가지고 있는 나라 백성은 행복한 것입니다. 오늘 삼일절 감사주일, 유관순 열사와 함께 대한독립을 외쳤던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독립’으로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 만만 감사를 드립니다. ‘대한독립만세’
샬롬. – 2015.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