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한국엔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속담이 있었습니다. 뒤웅박은 박을 타지 않고 꼭지 언저리에 손이 들어갈 만하게 구멍을 뚫어서 속을 파내어 말린 바가지입니다. 옛 어른들은 이 구멍 속에 곡식이나 씨앗을 담아 처마 밑에 매달아 두기도 하고, 성냥같이 손쉽게 쓰는 물건을 넣어 부엌에 걸어 두기도 했 는데, 부잣집에선 쌀같이 귀한 것을 담고, 가난한 집에선 여물 같은 것을 담아 두어, 그 안에 든 물건에 따라 뒤웅박의 가치도 달라진다는 데서 ‘뒤웅박 팔자’라는 표현이 나 왔습니다. 그러므로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말은,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똑같은 여성인데도, 그 인생에 담기는 내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부잣 집 남편을 만나면, 비단 옷 휘감고 살게 되고, 가난한 집 남편을 만나면, 무명옷에 밤낮 뙝볕에 일하며 살게 됩니다. 그런데 여성 팔자만 뒤웅박 팔자가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살 때, 정말 소중한 축복은, 만남에 있습니다. 부잣집 아빠를 만나면 부잣집 아이로 살 게 되고, 가난한 집 아빠를 만나면, 가난을 대물림 할 수 있습니다. 부모 잘 만나는 것 도 축복인데, 부모만이 아닙니다. 좋은 선생님, 좋은 친구 만나는 것도 중요합니다. 생 각해 보면, 사람팔자는 모두 뒤웅박 팔자입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크게 달 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좋은 만남을 위해서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런데, 성경을 보면, 조금 다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온통 좋은 배우자, 선생님, 좋 은 만남을 갖기 위해서, 소원하고, 애 쓰는데, 성경은 조금 반대로 되어 있는 느낌입니 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에 제자들을 선택하셨는데, 그 기준이 조금 이상합니다.
많이 배우고, 성격좋고, 잘 난 사람들을 제자로 만나지 않고, 거친 성격의 갈릴리 어부 들, 백성들에게 지탄받는 로마앞잡이라고 볼 수 있는 세리 출신, 돈을 좋아하는 가롯 유다, 그리고 열심당원 시몬등등, 한결같이 예수님께 도움이 될만한 ‘좋은’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만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사람들은 대개가 다 뛰어난 인물들이 아니었습니다. 문벌좋고, 학벌좋고, 지혜 있고, 재능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닮기 원하는 예수님 은, 좋은 만남을 달라고 기도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에도, 내가 조금 도움 받을 수 있는 사람을 기대하고 소원하지만, 예수님은 늘 죄인을 부르러 오 셨고, 부담스러운 병자를 가까이 하셨습니다. 배고픈 자, 소외된 자, 괴로운 자, 아픈 사 람들, 죄인들, 구도자들을 가까이 하셨습니다. 심지어, 십자가에 죽을 때조차도 그분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강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늘 죄인들과 병자들의 친구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축복의 통로, 구원의 통로, 그리고 기쁨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늘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대로 실천하셨습니다. 사실, 내게 도움이 되는 좋 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근사한 일입니다. 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복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서, 배우자 와 자녀들이 행복해지고, 주변 사람들이 복을 받는 사람이 진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 는 ‘복의 근원’인 것입니다. 늘 예수님을 본받아, 복의 근원으로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 들이 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특히 5월 가정의 달, 서로를 통해 복을 받으려 하기보다 는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는 동산 가족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샬롬. – 05.19.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