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가게 쇼윈도우에 보면, 화려한 옷을 걸친 멋진 “사람 같은 마네킹들”이 서 있습 니다. 어쩌면 그렇게 배도 하나 안나오고, 눈썹도 길고, 피부색깔도 곱고, 주름살 하나 없이, 팔등신으로 그렇게 서 있는지, 참으로 보기에 아름답습니다. 아무 옷 이나 턱턱 입혀도 잘 어울리는 훌륭한 몸매를 갖고 있습니다. 누구나 다 마네킹 같이 멋진 외모를 갖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마네킹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안 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자의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주인이 갖다 세워 놓는 곳에 멍하니 하루 종일 세워져 있는 마네킹…. 아무리 속눈썹이 길고, 팔등신에 배 하나 안나오고, 피부 주름하나 없고, 아무 옷이나 턱턱 입혀도 잘 어울리는 멋 진 몸매를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마네킹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은 그토록 소중한 선물입니다. 그 무 엇과도 바꿀 수 없는 놀라운 주님의 축복입니다. 그 소중한 생명을, 그 축복을, 그 은혜를 지 금, 저와 여러분들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쇼윈도우에 서 있는 마네킹이 사람처럼 꿈을 갖 을 수 있다면, 아마도 저는 주인이 자기에게 좀 더 멋진 옷을 입혀 주면 좋겠다는 바람, 제 발 겨울엔 비키니 입히지 말고, 밍크 털옷 입혀주기를 원함, 혹은, 주인이 제발 자기를 어둡 고 습하고 냄새나는 창고에 처 박아두지 않으면 좋겠다는 소원, 등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언감생심, 마네킹이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마네킹에게 가장 감격적이고 위대 한 축복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몸을 움직여, 자신의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생명일 것입니다. 이건 정말 멋진 옷을 입히고, 좋은 자리에 놓아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축복입니다.
성경 시대에 마네킹처럼 살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성전 미문에 서 구걸하던 앉은뱅이 거지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에 마네킹처럼 앉아 서 행인들에게 구걸하며 살았습니다. “한푼 줍쇼…” 이 다리 장애인의 소원은 그저, ‘날씨 가 나쁘지 않았으면, 자기를 놀리고 괴롭히는 성질 나쁜 사람을 만나지 않았으면, 마음씨 좋은 사람만나서, 한 푼이라도 더 동냥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정도였습니다. 자기앞에 놓인 동냥 깡통에 쨍그랑 떨어지는 동전 소리에 기뻐하며, 행여야 그 깡통을 누가 들고 튀 지 않을까 염려하며 깡통 붙들고 하루 하루 살았을 것입니다. 그 이상은 생각지도 못했습 니다. 마치 쇼윈도우에 세워져 있는 마네킹처럼 거리에 놓여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빌어먹 고 사는 처지에 감히 자신의 발목과 다리에 힘을 얻어, 걷고 뛰고, 성전에 들어가, 예배하고 노래하고 찬양하는 삶은 꿈에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에게 꿈에도 일 어나지 않을 그런 놀라운 은혜가 임했습니다. 성전 미문에 올라오던 두 사람이, 자기 손을 잡더니, ‘은과 금 나 없어도 내게 있는 것 네게 주니,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 라’하고 잡아당기니, 자기 발목과 다리에 힘이 생겨,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벌떡’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거지는 늘 두 손으로 꼭 붙들고 살았던, 자기앞에 놓인 깡통을 차 버리고, 성 전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두 손 높이 들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걷고 뛰면서 춤추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했습니다.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고, 다리를 못쓰는 것보 다 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예배의 자리로 걸어나온 저와 여러분들은, 성전 미문에 마네킹처럼 앉아 있던 장애인 거지가 평생토록 꿈꿔왔던 바로 그 축복을 이미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 루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있고, 주님앞에 나올 수 있는 건강한 다리가 있 다면, 그 자체로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 이보다 더 기뻐 하고 감사할 조건이 뭐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샬롬. 2019.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