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조상신을 섬겼던 우리 한국인들은 뼛속깊이 유교의 잔재가 남아 감히 죽음을 언급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분들앞에서, 인생의 끝,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을 꽤 무례한 언행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어린 손주들이 돌아가시기 얼마 직전인 할머니 할아버지께 절을 할 때에도,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 라고 기원했던 것입니다. 아무도 죽음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살아계신 분들앞에서 죽음을 언급하는 것은 큰 불효로 알았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한국인들은 죽음– 인생의 마지막, 끝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그래서 죽음 준비– 마지막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자기 영혼이 죽음 후에 어디로 가는지, 별로 생각없이 살다가, 제대로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채 덜커덕 죽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신앙은 늘 죽음을 언급합니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이 싫어할 정도로, 늘 십자가의 죽음을 언급하고 사셨습니다. 죽음앞에 치열하게 사시며, 십자가사명 감당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내게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고백하며 늘 마지막을 염두에 두고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끝, 마지막,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사는 것은 무례한 것도, 슬픈 것도, 어두운 것도, 우울한 것도 아닙니다. 인생의 끝, 마지막을 염두에 두는 것은 그야말로 오늘을 잘 살기 위함입니다. Well dying을 생각하는 사람만이, 현재 well being을 이룰 수 있습니다.
지난 2005년 췌장암이 발견되어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스탠포드 대학에서 스티브 잡스가 했던 졸업 연설은, 오늘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는 명연설입니다. 그 연설문에서, 제게 특히 감동을 준 부분은 죽음에 대한 언급이었습니다. 잡스는 17살 때, 이런 구절을 읽었다고 합니다. “만일 당신이 매일을 삶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대부분 옳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잡스는 이후 33년간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말했답니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하게 될까?”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잡스가 인생의 큰 결정들을 내리는데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도구였다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모든 외부의 기대들, 자부심, 좌절과 실패의 두려움, 그런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을 남기게 되고,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함정을 벗어나는 최고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6:8) 때로 하나님을 모르는 이 세상 사람들이, 마지막에 대해 아무 생각없이 그저 교회만 다니는 사람보다, 더욱 성경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당황케합니다.
이제 우리는 2014년 마지막 한 달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마지막 한 달, 지혜롭게 보낼 수 있을까요? 그것은 내 생애 수십년이 남아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딱 한 달밖에 없다는 생각, 아니, 매일 매 순간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중요한 것들을 위해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규칙적인 기도생활과 성경묵상, 그리고 봉사와 섬김, 전도와 선교, 혹은 그외 무엇이나 열심을 다하십시오. 마지막 한 달,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름의 상을 쫒아, 풍성히 결실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14.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