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제가 신학교를 들어갈 때쯤에 교회당 건축을 시작하신 선배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아무 것도 없는 상황속에서 무리한 성전 건축을 믿음으로 도전하여 40일 금식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부르짖는 기도로 목은 반쯤 쉬셨고, 오랜 금식으로 인해 몸은 한없이 쇠약해지셨습니다. 저는 성전건축은 정말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전건축은 목회자만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에게도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 주일, 어느 셀모임에 참석했다가 저는 과거에 성전 건축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던 분들이 적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회자들의 과도한 열심으로 인해, 무모하게 작정헌금을 하여 빚지고 나서 갚지 못하는 그런 죄책감으로 사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 이후에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라는 심정’이 되어 성전 건축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불편해지는 트라우마가 생긴 것입니다. 이렇게 목회자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와 고통을 주고, 성도들에게 신앙의 트라우마를 줄 수 있는 성전 건축을 왜 해야 할까요?
제가 성전 건축을 늘 꿈꾸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입니다. 첫째 이유는 예수님께서 성전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만민의 기도하는 집’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제게 있어서 성전건축은 주님을 본받는 삶이었습니다. 둘째는 빚진 자의 심정입니다. 사실 동산교회에 제가 부임한 것은 지난 2003년이었고 현 동산교회당은 전임자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인해 세워진 교회입니다. 전임자들의 희생의 대가로 엉뚱하게 제가 오늘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통해 저는 성전 건축은 나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미래를 위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설사 제가 목회하는 기간에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건축헌금을 꾸준히 드리며 미래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셋째는 자라나는 아이들 때문입니다. 보통 부모님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꾸게 되는 경우는 대부분 아이들 때문에 생깁니다. 자녀가 없을 때에는 방 한칸도 부부에게 넓을 수 있지만,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게 되면, 부모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각 방을 주기를 원하게 됩니다. 우리 교육부는 오래 전부터 방이 없었습니다. 분반 공부할 방은 당연히 부족하여, 2부와 3부로 나뉘어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아이들이 뛰어 놀만한 공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위험하게 찻길을 건너다니고, 파킹장을 뛰어다녔습니다. 아이없는 어른들만 교회에 오신다면, 별 문제가 없지만, 아이들과 함께 오는 부모님들을 뵈면 늘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떻게든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성전건축은 제가 아무리 하고 싶다고 해도, 주님이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억지로는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성전 건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성전이 있는 저에게, 목회자도 힘들고 성도들도 부담스러워하는 모험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부족한 제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누군가를 위해서, 쓰임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새 성전을 통해서, ‘쉴 곳을 찾아 헤매는 많은 영혼들’이 주님안에 안식을 얻고 복을 받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또한 지금까지 20명도 들어가기 힘든 공간에서 무려 40명씩 복닥 복닥, 불평 한마디없이 버텨준 중고등부 아이들, 우리 어린 자녀들, 그리고 모든 학부형들께 좀 더 나은 공간을 마련해 줄 수 있었다는 점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