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사실, 이 땅에서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죽음앞에서 정말 다릅니다. 우리는 육신의 죽음을 영생으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알고 감사하지만, 세상은 죽음을 모든 희망의 끝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래서 영생의 소망이 없는 세상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는 어딘지, 다 허무하고 어둡습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노래가 다 슬픈 것입니다. 그러니 인생에서 남는 건, 순간을 즐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노래가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입니다. ‘젊을 때 즐기고나 죽자’ 입니다. 그런데 요즘, 오래 살다보니, 별 일이 다 생깁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곡이 한참 입에 오르내리더니, 드디어 ‘100세 인생’이라는 곡이 대박을 맞았습니다. “6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근, 아직은 젊어서 못간다고 전해라. 90세에 날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테니 재촉말라 전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이런 식의 가사인데요. 가사 내용은 재미있으면서도 곡조는 ‘아리랑 아리랑’ 슬프기 짝이 없는 참으로 웃픈 곡입니다. 영생의 희망없는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의 구원자와 주님으로 영접하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지지만, 특별히 시간이 달라집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 믿을 때, 우리 인생은 100세가 아니라, 영원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 150세까지 산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집니다. 따라서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부르는 노래와 예수님을 주인삼은 저와 여러분들이 부를 노래는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100세가’가 아니라, ‘영생가’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항상 찬송부르다가, 날이 저물어 오라 하시면, ‘못간다고 전해라’가 아니라, ‘영광 중에 나아가리’”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후렴도 아리랑 아리랑이 아니라, “열린 천국문 내가 들어가 세상 짐을 내려 놓고, 빛난 면류관 받아 쓰고서 주와 함께 길이 살리”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겨우 150살 사는 이 세상이 전부입니다. 영생의 희망이 없기에, 그 짧은 150년도, 여기가 극락인가, 혼미하여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노래 부르며 북망산 고개를 힘겹게 넘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 삼은 성도는 세상에서 부르는 노래도 달라집니다. 100세가는 말도 안되게 너무 짧습니다. 우리는 그냥 영생가를 감사함으로 부릅니다. 우리는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 영원히 사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께 만만 감사를 드립니다. 샬롬. 2016.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