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에 나온 영화중에 ‘증인’이라는 제목의 좋은 영화 한 편이 있습니다. 영화는 얼굴에 비닐봉지를 쓴 채 죽은 노인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죽음이 자살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그 노인의 가사 도우미가 살해 용의자로 지목되는데, 그건, 살해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단순하게 풀릴 수 있었던 살인 사건이었는데,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가 자폐라는 장애를 가진 지우라는 이름의 어린 학생이라는 점에서, 복잡해집니다. 살인 용의자의 변호인 측은 자폐아인 여학생의 증언은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자폐’는 일종의 정신병일 수 있기에, 정신병자가 본 사실은 진실이 될 수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은, 바깥 세상과 접촉에 등을 돌리고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을 뿐, 사건 그대로의 진실을 기억하고 설명함에는 어떠한 장애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의 특징은, 거짓말을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지우가,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증인의 역할을 감당하려 해도, 자폐에 대한 사회 일반인들의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자폐인은 증인으로서 쓰임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증인으로 나서다가, 오히려, 여러 사람에게 공격을 당하여, 자신이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에서 지우는 증인으로 쓰임받는 과정에서 큰 상처를 받고, 의기소침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여곡절끝에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지우라는 여학생이, 1심에서 무죄로 판결된 사건의 항소심에 증인으로 출석하려 하면서, 자기 엄마를 설득하는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지우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증인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변호사는 못돼도 증인은 될 수 있습니다. 증인이 되어 진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누군가 어떤 사건 현장에 있었고, 그 사건의 내막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었다면, 그가 누구든, 변호사는 못되어도, 증인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어떤 사건을 목격한 증인이라면, 있었던 일을 사실 그대로 말할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너희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1:8) 여기서, ‘나의 증인’이라는 구절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변호사가 아니라, ‘나의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꾸며대거나 변호사처럼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기 전의 삶은 어땠으며,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리고 예수 믿은 후에,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우리 각 사람이 만난 예수님에 대해서 추호도 거짓없이 있는 그대로 세상 모든 사람들 앞에서 증거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열 두 사도와 바울 사도를 포함하여 신약성경 시대 모든 성도들은 자기들이 보고 듣고 경험한 그 예수님을 증언했습니다. 예수님을 증거하면서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마치 자폐아 지우가 ‘증언’하면서 겪은 것과 비슷한 많은 환란을 당하게 됩니다. 성경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복음 전도로 인해 미쳤다는 이야기도 듣고, 심지어 살려 두어서는 안된다는 위협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신앙생활, 교회 생활의 핵심은, 세상 모든 사람들앞에서 ‘예수 증인의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늘 경험하는 그 예수님, 살아계신 구원자 그리스도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만나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내가 예수 믿기 전에는 어떤 인간이었고, 예수 믿은 후에는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그리고 예수를 어떻게 믿고 영접하게 되었는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은 누구나 변호사는 못 되어도, 증인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예수 증인된 사명을 성령 충만으로 온전히 감당하여, 거짓과 악함으로, 마음이 가리워 진짜 영혼의 살인자인 사탄에 매여 있는 수많은 영혼들을 자유케 하고, 주님앞으로 인도하여 구원하는데 존귀하게 쓰임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24.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