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에 나오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이야기입니다. 한 랍비가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하고 나왔는데, 한 아이의 얼굴은 시커먼 그을음이 묻어 있었고, 다른 아이는 깨끗했는데, 그렇다면 두 아이 중 누가 얼굴을 씻겠는가?” 제자는 당연히,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씻었을 것이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랍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깨끗한 아이를 보고 자기 얼굴도 깨끗할 것이라 생각해서 씻지 않지만, 얼굴이 깨끗한 아이는 친구의 얼굴이 더러운 것을 보고, 자기 얼굴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여 씻는다’고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 말에 제자는 큰 깨달음을 얻었는데, 랍비는 똑 같은 문제를 다시 냅니다. ‘굴뚝 청소를 하는 두 아이 중에 한 아이는 얼굴이 깨끗하고, 다른 애는 더러운데, 누가 얼굴을 씻겠는가’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답은, “문제가 틀렸다”입니다. ‘어떻게 같은 굴뚝을 소재했는데, 한 아이만 얼굴이 더러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굴뚝 소재하면, 둘 다 얼굴이 더러울 수밖에 없고, 그래서 서로의 더러운 얼굴을 보고, 둘 다, 얼굴을 씻게 될 것이라는 것이 답이 됩니다.
성경은 “물에 비치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치느니라” (잠 27:19)고 말씀했습니다. 거울이 흔치 않았던 옛날에 사람들은 청동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 보거나, 청동 거울 하나 장만할 수 없었던, 가난한 사람들은 물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보았습니다. 물에 비추면, 자기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머리가 하얀 지 까만 지, 얼굴에 주름이 있는지 없는지, 얼굴 모양이 삼각형인지 사각형인지, 물에 비추면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의 얼굴을 비교적 정확히 알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치 사람속은 알 수 없다’고 물에 비추인 모습은 사람의 외모이지, 사람의 마음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내 속에 도대체 무슨 생각들이 꿈틀대고 있고,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건, 함께 굴뚝 청소하듯 살아가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시대, 죄악이 가득한 어둡고 악하고 더러운 세상에서, 굴뚝 청소하듯 살아가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누구나 다 비슷한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세파에 찌들고 온갖 죄와 악함으로 시꺼멓게 더럽혀진 서로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고, 회개하고 고침 받아, 깨끗한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서로의 모습을 통해서 자신을 알 수 있습니다.
똑같이 굴뚝 청소하고 나온 아이들이 어느 하나 얼굴이 깨끗할 수 없는 것처럼, 숯 검댕이같이 어둡고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때 묻히고 살아가는 인생들이, 어느 누구든 남보다 결코 깨끗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자신은 남보다 깨끗한 줄 착각하여, 더럽게 보이는 사람을 정죄하고, 비난하고 비판하고, 때로는 죽이려 들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을 가운데 두고, 그 여인을 돌로 쳐 죽이려 둘러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 말에 놀랍게도, 모두 그 자리를 떠나게 되었고, 예수님께서도 그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서로 비추인다고, 우리는 다른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아,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회개하고 돌이켜, 우리 심령을 성령과 물로 씻어, 깨끗이 함을 받고,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살게 됩니다. 성경은,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갈 6:1)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모습속에서 좋지 않은 점을 발견한다면, 비난하고 정죄하는 대신에 꼭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 회개하고 돌이켜 고침 받은 후에 상대방을 도와 온전케 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4.6.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