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부모님께 대한 오해가 많았습니다. 형제가 5명이었는데, 셋째는 늘 불만이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빠 언니, 막내는 사랑하는데 본인은 늘 이도저도 아닌 찬밥신세라 한탄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내내, 셋째는 자기 인생은 불행하다고 여겼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도 부모님의 임재와 그 은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습니다. 마음은 늘 공허하고 허전했습니다. 방황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중고등부 시절, 우리는 종종 성경을 두고 난해한 질문들을 하며 토론하기를 즐겨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미래를 아시는데, 그러면 아담이 범죄할 것도 미리 아셨을 것이요, 그리고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 절대주권자 하나님이시라면,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아담이 죄짓지 않게 인도하실 수 있었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아담이 실족하도록 놔 두셨다면, 아담의 범죄는 어쩌면 모두 하나님의 무관심 때문이 아닌가라는 식의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인간 입장에서 생각하면 하나님께 서운한 점이 여럿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셨다라는 구절도 그렇습니다. 만약 이미 우리 운명이 우리의 노력과 전혀 상관없이 모두 다 결정되어 있다면, 우리의 모든 노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람은 그냥 이미 하나님께서 정하신 운명따라 팔자따라 살아가는 것 아닌가 라는 자조섞인 푸념도 있었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마음대로 하시는데 그건 독재 아니신가? 우리가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면, 우린 로보트인가? 별별 이야기들을 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토론은 재미있었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은 별로 느끼지 못했었습니다. 은혜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은 지적동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요 순종이라는 사실입니다. 중세 안셀름이라는 학자는 “하나님은 이해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이해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붙들 때, 하나님의 임재와 그 영광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언제나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감사하고 찬송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자연히 우리는 나를 사랑하시는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내 모든 일을 반드시 좋게 만들어 주신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 확신속에 우리 삶에 맺히는 열매가 찬송과 감사입니다. 찬송과 감사할 일이 있어 찬송과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선하고 인자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자연히 범사에 감사하며 주님을 찬송케 됩니다.
어릴 때, 가정 생활, 행복한 삶은 부모님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부모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불안해지지만,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고, 부모님의 나에 대한 사랑과 선함을 믿으면, 늘 안식과 평강을 누리게 되고,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늘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믿음으로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임재와 영광을 언제나 누리고 송축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18.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