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필리핀 만나나오 섬에서 선교하셨던 선교사님의 흥미로운 간증을 들었습니다. 선교사님은 필리핀에서도 매일 새벽기도회를 하셨는데, 새벽기도회 순서를 마치고, 자유롭게 기도하는 개인기도 시간이 되면 제일 먼저, 필리핀 언어인 따갈록으로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말문이 막히면, 영어로 기도하게 되는데, 늘 마지막은 한국어 기도로 마치셨습니다. 한국어로 기도하지 않으면, 마치 밥과 김치를 먹지 않은 것처럼, 뭔가 개운하지 않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한국어를 말하고 기도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일본 유학시절 마지막으로 남긴 시로 여겨지는 작품은, ‘쉽게 씌어진 시’입니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중략…//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이, 1942년 쓴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일제 강점기인 1917년 간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나라는 없었습니다. 나라 잃은 백성에겐, 본인 스스로를 부정하고, 일본인으로 귀화하기 전엔, 아무 희망이 없었습니다. 나라 잃은 백성이 모국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는 것은, ‘슬픈 천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동아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미국과 태평양 전쟁을 치르면서, 일본에 두 번의 버섯 구름이 일어난 후에 전격적인 일본 천황의 항복으로 그렇게 꿈꾸듯이 대한독립 만세가 이루어졌습니다. 한국이 광복을 얻게 된 것은, 주변 어느 국가의 도움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은 전혀 한국을 독립시킬 생각이 없었습니다. 소련 공산당도 아닙니다. 중국은 당시 자기 코가 석자여서 남의 나라를 간섭할 기력이 없었습니다. 미국은 일본과 은밀히 가쓰라-태프트 조약을 맺고 한반도를 일본에 넘기기로 사인한 국가입니다. 그리고 한일합방후 30년이 지나는 무렵엔 거의 한 세대가 지날 때였기에, 한국인의 저항도 많이 약해졌을 뿐만이 아니라, 조선은 당시 거의 황국신민화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처럼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아이들은 일본말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배웠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말을 사용하여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려는 것은 무엇이나 ‘슬픈 천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대한독립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대한독립은 우리 한국인이나 혹은 그 밖의 누구의 도움을 받아 얻은 것이 아니라, 한 때 서로 죽이 잘 맞았던 미국과 일본이 태평양을 두고, 한 판 승부를 벌이는 와중에 일본이 패망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이었습니다. 너무나 우연히 아무도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얻은 독립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1945년 8월 15일 대한독립이 되었다는 사실도 잘 몰랐습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시 126:1절)고 말씀했습니다. 대한독립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마치 꿈꾸는 것처럼,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대한독립은 하나님께서 한국민족을 위해 이루신 큰 일이었습니다. 오늘 광복절 감사주일, 우리는 이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나라 언어로 시를 쓰는 것도 마치 무슨 죄지은 사람모양 ‘슬픈 천명’으로 알고 살았던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내 나라 내 언어로 마음껏 각자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한국에서나 필리핀에서나 미국에서나, 언제 어디서나 한국어로 시원하게 말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샬롬. 2021.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