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 년 전 종려주일,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 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열렬히 환영했던 이 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백마를 타고, 군사를 일으켜, 로마 제국과 한 판 대결을 벌여서, 저들을 다 유대인의 땅에서 몰아내고, 피비린내 나는 정복 전쟁을 통 해 온 땅을 지배하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적으 로 몰아 숙청해 버리고, 또한 로마에 빌붙어 살았던 세리같은 친로파를 다 죽이고, 열심당원같은 독립유공자들을 우대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백 마가 아니라,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나귀 가 아니라, 얼마든지, 말이나 낙타, 그 이상의 탈 것을 준비하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 님께 평소에 받은 은혜가 넘쳐서, 예수님 주변엔 3백 데나리온의 향유옥합을 깨서 그 발에 부을 정도의 헌신자들이 즐비했기에, 예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든 다 이룰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선택은, 정말 놀랍게도 그 많은 탈 것들 중에 어린 나귀였습니다. 왜 어린 나귀를 타셨을까요? 사실 나귀와 말은 그 용도가 크게 다릅니다. 오랜 세월, 말은 전쟁의 도구였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말은 오늘날 탱크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기마병, 마차부대, 말은 모두 상대방을 쓰러뜨리고 정복하는 일에 쓰임받았습니다. 반면에 나귀는 전투에 쓰임받 는 짐승이 아니라, 물건 나르는데 주로 쓰임받았던 짐승이었습니다. 게다가 어린 나 귀라면, 사람 달리기보다 느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어린 나귀를 타셨 다면, 예수님의 마음에 로마제국을 쳐부수고,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메시야가 되고자 하는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전쟁의 도구인 말이 아니라 어 린 나귀를 타시고, 평강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어린 나귀를 타신 예수님 은 세리 마태와 열심당원 시몬을 모두 제자로 받아, 저들 가운데 화평을 이루셨습니 다. 또한 로마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 주시며, 이스라엘에서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 다고 저를 칭찬하셨습니다. 그렇게 로마인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화평을 이루셨습 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뿐만이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과 이방 사람들에게도 은혜 를 베풀어, 모두의 화평이 되셨습니다. 또한 우리 죄인들과 우리 하나님 사이에 죄로 인해 원수된 것을 십자가에서 소멸하시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어 린 나귀를 타신 주님은 이 땅에 평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과 더 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쫒아 행하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3월 16일 아틀란타 일대 3곳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져 8명의 아시아계 여성이 살해되었습니다. 그 중 4명은 한국인이었습니다. 범인은 이제 겨우 21살의 청년입니 다. 충격적인 사실은 그가 목사 아버지를 둔 나름,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는 점입니 다. 그는 평소 ‘총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총과 하나님은 함께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검으로 선 자는 검으로 망한다’라고 말씀하 시면서, 폭력을 극도로 경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정치적인 메시야로 말을 타 고 칼차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이 아니라, 평강의 왕으로 무기 하나 없이 어린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셨습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전쟁의 도구인 말이 아니 라, 평화의 도구인 ‘어린 나귀를 타신 우리 왕’,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21.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