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주 오래 전, 캘리포니아 살 때에 들었던 말입니다. 남가주에 이민와서 사는 분에게 한국에 사는 친구가 오랜만에 찾아왔습니다. 남가주에 살던 분은 한국에서 온 친구를 융숭히 대접하고 한국에 돌아갈 날이 되어, 공항에 라이드를 주려고 했을 때, 갑자기 급한 사정이 생겨 아들에게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말이 서투른 미국에서 태어난 아들은 아빠 친구분을 친절하게 공항까지 잘 모셔다 드리고, 자동차에서 내리시는 분 뒤에다가 한 마디 했습니다. “야 인마 안녕히 가세요.” 그 한마디에 한국 친구분은 얼음이 되었습니다. 처음엔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 말에 갑자기 분노가 끓어올랐습니다. 도대체 자신이 뭘 잘못했기에 지 아들을 통해 자신을 모욕하는가 치를 떨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대로는 한국에 갈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미국사는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따지러 간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듣고는 오해가 풀렸습니다. 알고보니, 친구는 한국말을 잘 못하는 아들에게 어릴 때부터 야 인마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아들은 늘 자신을 ‘야 인마’라고 부르는 아빠를 통해서, ‘야인마’는 친한 사람사이의 호칭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 가까워진 아버지 친구분을 가깝다는 의미에서 ‘야인마’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아버지 친구분은 마음이 풀렸지만, 이번엔 아들의 마음이 얼어붙었습니다. 지금까지 자기 아빠가 ‘야인마’, 그 한마디에 분노가 탱천해져서 차를 돌려, 따지러 올 정도로 모욕적인 말로 자신을 불렀다는 사실에 큰 상처를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들을 한인 교회에서 잃어버리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한인 1세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단순히 영어 문제 때문만은 아닙니다. 문화 차이 때문만도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 자녀들을 너무나 많이 아무렇지도 않게 반말하면서 막대하고 노엽게 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1세 어른들과 함께 지내면 혼나기 일수 입니다. 한국말 못한다고 혼나고 인사 먼저 안했다고 야단 맞습니다. 그리고 반말 정도는 알아듣는 학생들에게 늘 반말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조금만 잘못하면, 험악한 표정으로 큰 목소리로 위협합니다. 그리고, 드물게는 심지어 아이들에게 체벌을 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양육의 기본은 사랑이요 상호 존중입니다.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우리 자녀들을 ‘그리스도를 닮은 아름다운 사람’으로 양육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어른들은 오늘날과 비슷했습니다. 한 번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 때, 주변 어른들,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화를 내면서 저들을 혼내었습니다. 여기가 어느 자리라고 애들을 데리고 오느냐고 책망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 모습을 보고, 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시며 ‘(마 18:5)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마 18:5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고, 예수님처럼 사랑과 존중함으로 대하라는 말씀이십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며, 이 세상의 미래입니다. 미래의 멋진 세상은 오늘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어른들의 영향에 달려 있습니다. 어린이들을 예수님처럼 사랑과 존중함으로 대하여, 멋진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17.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