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364년 전인 1636년 병자호란 때 당시 평양 감사는 애첩이었던
애기(愛妓)를 먼저 피난보내고 뒤따라 남하하던 중 지금의 개풍군에서
오랑캐에게 막혀 끝내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평양감사의 애기는 매일 이 봉우리에서 강 건너 북녘 땅을 바라보며 기다리다 끝내 지치고 병들어 죽으면서, 후에 님이 오시면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이곳에 묻어
달라고 유언하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 후 1966년 10월 10일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애기(愛妓)의 애절한
사연을 듣고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왕래하지 못하는 우리 민족의 비극적인 사연과 같다며 이곳을 애기봉(愛妓峰)이라 명명하고 친필휘호를 하사하여 애기봉 비석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지난 12월 21일 화요일, 다가오는
성탄절을 맞아 해병대 제2사단의 관할지역인 서부전선 최전방에 있는 이 애기봉 전망대에서 북한 동포들에게 사랑을 메세지를 전파하기 위한 점등행사가 2004년 이후 7년 만에 열렸습니다.
해발 155m이며, 북한과의 거리가 1.3km에 불과한 애기봉 전망대는 해병대 청룡부대가 관할하는 민통선 이북지역에 자리잡고 있는데 검무소를 통과해야 출입이 가능한 곳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깊다는 애기봉 점등행사는 정전협정 체결 이듬해인 1954년, 북한에 자유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애기봉의 소나무에서 처음으로 성탄수를 만들어 불을 밝힌 것이 시초입니다. 그리고 71년
30m 높이의 철탑으로 교체되는 과정을 거쳐 2003년 12월 11일까지 49년동안 석가탄신일과 성탄절에 연
2회 실시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애기봉 점등행사는 2004년 6월 3일,
제2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에 따라 중단되었고 북한은 당시 멀리까지는 개성에서도 볼 수 있는 ‘애기봉의 철탑과
자유로의 차량 불빛이 북측을 가장 자극하고 있다‘는 이유로 철탑 철거를 요구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7년동안 중단되었던 애기봉 성탄절 점등행사가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로, 대북 심리전이 재개되면서 12월초에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등탑에 전구를 달고 성탄 트리를 만들겠다는 의사를 전달하자 군이 허락하여 자연스럽게 다시 불을 밝히게 된 것입니다. 순복음교회 이영훈목사는 “한국교회가 성탄절의 참 의미를 되새기고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애기봉 성탄트리 점등식을 갖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빛이 어두움에 비취매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했다’(요
1:5절)고 말씀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서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생명의 빛이 북녘땅에 다시 비취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성탄의 빛을 시발점으로
북한땅의 모든 어둠이 물러가고, 남북평화통일이 복음안에서 온전히 신속하게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