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언제나 기도의 중요성을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얻지 못함은 구하 지 않기 때문이요,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말씀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모두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일해야 하지만, 기도하면,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일하십니다. 태평양를 내 어깨힘으로 노저어 건너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 님께서 불어주시는 바람을 의지해서 나아가면, 별 힘을 들이지 않고도, 우리는 먼 바다를 항해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그러나 기도는 ‘어 떻게 기도하느냐?’가 기도하는 자체보다 때로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응답받을 수 없는 엉뚱한 내용의 기도’를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버지니아에 살 때, 우연히 신문광고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목은 “100일 기도에 여러분을 초청합니다”였습니다. 그리고 백일기도를 하면, 병이 낫 고, 직장 문제가 해결되고, 인생의 모든 해답을 얻게 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수 고하고 무거운 짐진 분들, 마음이 슬프고 괴로운 분들, 상처받고 고통가운데 처한 분들, 누구나 오라고 초청문이 씌여 있었습니다. 저는 어느 교회에서 낸 광고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보니, ‘어느 절에서 스님이 낸 광고’였습니다. 사 실, 기독교인들만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모든 종교에 기도가 있습니다. 무 슬림도 기도하고, 그것도 무려 하루에 5섯번 메카를 향해 무릎꿇고 기도하고, 새 벽기도는 기독교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힌두교인들은 더 일찍 일어나 기도하고, 불교인들도 그렇습니다. 심지어, 사단 숭배자들도 열정적으로 기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되, 이방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처럼, ‘중언부언’ 기도하지 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인생에 닥치는 환란을 피해야 할 것으로만 생각하 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환란없이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병들지 않고, 힘들지 않고, 괴롭지 않고, 그저 쉽고 넓은 길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 는 환란이 닥치면 무슨 큰 불행을 당한 것처럼, 괴로워하고 피하려고만 하지, 그 환란을 통해서 주님을 바라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병들었을 때에도 병에서 고쳐 달라는 기도는 하지만, ‘절대로 이 병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 달라는 기도’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그리고 마침내 소망을 이루게 하는 하나 님의 섭리 일 수 있습니다. 때로 수없이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연약하게 하시어, 우리를 낮추고 주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주님께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역경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환란이 닥칠 때, 우리는 그 저 환란을 면케 해 달라는 기도보다는 “하늘 아버지여, 이 환란을 통해서, 주님을 더욱 깊이 알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기를 원합니다” 라고 기도 할 수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질병을 단순히 고쳐 달라는 기도보다는 “이 질병을 통해서, 주님을 더욱 깊이 알게 하시고, 이 질병을 통한 주님의 뜻을 이루어 주옵 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때 은혜가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예수 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 게 더하시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인생의 모든 환란가운데서도 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로, 참된 소망을 이루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 2019.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