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예배가 신앙생활의 거의 전부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교회 건물은 거의 예배실 하나로 이루어져서, 교회는 종종 예배당으로 불렸습니다. 모든 교회 행사는 다 그 한 예배당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교육관이 따로 없어서, 대예배실에서 어린이 예배가 끝난 직후에 아이들 분반공부가 바로 같은 장소에서, 각 반 별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때, 초등학교 3학년 우리 남자반을 맡은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키 크고 얼굴이 하얗고 입술이 붉고, 운동 잘하는, 양복이 참 잘 어울리는 젊은 꽃미남이셨습니다. 그 선생님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까닭은 그분이 멋진 꽃미남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들에게 ‘성도의 교제’를 깨닫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때 까지만 해도, 교회 오는 이유가 예배 드리러만 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배 드리고 나면 우리는 무슨 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들처럼 재빨리 집으로 달아났습니다. 예배당 하나 덩그러니 있는 교회에 아이들이 머물 장소도 없었고, 교회에 남아서 할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예배를 마치면 때때로 분반 공부를 예배당안이 아니라, 예배당 밖에서 하시곤 했습니다. 우리는 날씨가 따뜻한 봄날이나, 뜨거운 여름, 그리고 선선한 가을에 선생님을 따라, 가까운 산이나 들로 나가서, 선생님이 사 주신 과자도 먹고, 재미있는 놀이도 하면서,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좁은 예배당에 답답하게 갇혀 있다가 코에 신선한 바람을 쐬고 나면 ‘할렐루야’, 찬양이 절로 나왔습니다. 교회 학교는 세상 학교와 많이 달랐습니다. 세상 학교에서는 늘 어두운 표정의 선생님들이 인상을 쓰면서 무슨 전쟁터에 나가시는 분들처럼 몽둥이나 회초리를 무기처럼 들고 교실에 들어오셨습니다. 출석부도 때로 아이들 머리를 내리치는 무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세상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준비물 안 가져왔다고 야단치고 육성회비를 내지 않았다고 모욕을 주고, 늘 성적순으로 아이들을 평가하여 괴로움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늘 선생님이 시키는 일을 다 해야 했습니다. 교실청소, 화장실청소, 복도청소, 선생님 개인 심부름. 게다가 친구들끼리 싸움도 많아서, 학교 가는 것이 지겹고 싫은 날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교회학교 선생님은 일단 손에 몽둥이와 회초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늘 밝고 환한 얼굴로 우리들을 맞아 주시고, 사랑의 말로 우리 심령을 위로해 주시고, 때로 맛있는 과자도 사 주셨습니다. 게다가, 교회는 학교처럼 성적순으로 우등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암송, 그리고 성적과 아무 상관없는 전도상이 제일 컸습니다. 누구든 전도하면 제일 큰 상을 주니,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었습니다. 세상 학교와 교회 학교는 마치 지옥과 천국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수님 없는 세상은 사랑이 없었고, 예수님이 함께 하는 세상은 사랑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없는 세상은 어두웠고, 성적순으로 서로 비교했고, 누군가 정한 기준에 맞지 않으면, 모욕을 주고 학대했지만, 예수님 있는 세상은 밝았고, 서로 칭찬하고 격려했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가 다 하나님앞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딸, 존귀하고 보배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예배를 통해 돈독해진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가 ‘성도들의 교제’를 통해서 확인되어질 때, 우리는 세상에서 결코 볼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천국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천국을 맛보게 될 때에 비로소, 성도들은 ‘아…. 이래서 교회를 다니는구나.’ 교회 다니는 맛을 알게 됩니다.
교회는 예배만 드리기 위해서 오는 곳이 아닙니다. 신약 시대 교회들이 예배를 드린 후, 애찬식이 있어서 서로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서로 나누고 돌보는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믿음의 공동체안에 이루었듯이, 오늘날에도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지상의 모든 교회들은 이 세상에서 결코 맛볼 수 없는 하나님 나라, 천국을 보고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말씀안에서,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서로 나누고 돌보는 성도의 교제로 행복이 충만한 천국을 맛보고 그 천국을 이 땅에 이루어가는데 쓰임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25.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