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약 40년 전쯤엔, 아들 셋을 둔 어머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가면, “밥 안먹어도 배 부르겠어요.”라고 말하며 어디를 가든지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부러움이 크게 달라져서, 이제는 시골 할머니들마저 “아이고, 어쩌다가 아들만 셋을…, 노후에 쓸쓸해서 어쩌면 좋아요?”라고 동정한다고 합니다. 언제는 사람들이 아들만 찾았는데, 지금은 아들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주부는 ‘10명 중 한 명뿐’이라고 합니다. 어떤 어머니는 장가간 아들과 집안 일을 의논하다가 ‘색시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아들의 말에, 크게 실망하여 ‘장가간 아들은 옛 사랑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딸은 살갑기나 한데, 아들은 아무짝에도 소용없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됩니다. 그래서, “잘난 아들은 국가의 아들,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 그리고 못난 아들만 내 아들”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정말 못난 아들만 내 아들이 되기도 합니다.
아들 둘, 딸 하나 있는 집에 큰 아들에게 시집온 여성이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고등학교 중퇴하고 직장도 안 다니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 18평 아파트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작은 아들과 함께 살던 어머니는 큰 아들이 모든 생활비와 병원비등을 부담하고, 딸이 조금 보태 주어 사셨는데, 큰 며느리 눈에는 평생 무직 상태로 집에만 있으면서 형의 도움만 받는 시동생이 늘 못마땅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부터 시어머니가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몸이 불편한 시어머니 곁에서 병원을 모시고 다니며, 모든 병수발을 들고 있는 시동생이 며느리는 너무나 고맙고 든든했습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키고, 못난 자식이 효도한다고, 어쩌면 어머니 생활비를 댄 큰 아들이 효자가 아니라, 결혼도 안하고 늘 시어머니 곁에 딱 붙어사는 못난 시동생이 진짜 효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의 모습도 때로 이와 비슷할 수 있습니다. 똑똑하고 잘난 성도들은 정치하느라고 바빠서 신앙 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돈 잘 버는 성도들은 사업하느라 선교하고 봉사하기 어렵습니다. 예외는 있지만, 그래도 신앙생활에 열심 있는 성도들은 대부분, 평범한 분들입니다. 잘난 사람, 돈 잘 버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할 일이 많아, 주님의 초청에 응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병들고 능력 없는 부족한 사람들만 주님 앞에 나와 ‘주여 주여’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키고, 못난 자식이 효도한다고, 결국 늘 부족한 인생들이 주님 곁을 맴돌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뭔가 부족한 인생들이 예수님을 늘 왕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빈부귀천 남녀노소 상관없이 모든 세상 사람들을 부르시지만, 잘난 사람, 부요한 사람, 몸도 건강하여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잘 따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는데,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먼저 알아 보았어야 할 대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 장로들, 부자들, 그리고 왕족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고, 예수님을 알아보아도 잘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제대로 알아보고 따른 사람들은 한결같이 병자들, 귀신들린 자들, 장애인들, 여인들,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힘없고 연약한 인생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종려주일,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잘 생기고 멋진 말을 타신 것이 아니라, 나귀를 타셨습니다. 나귀 중에서도 어린 나귀를 선택하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어린 나귀를 타신 것입니다. 주님께 쓰임받는 대상은 언제나, 사람 눈에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신다”(고전 1:27-28)고 말씀했습니다. 어린 나귀 같은 보잘 것 없는 인생들을 택하시어, 하나님 나라 영광을 위해 존귀하게 쓰임받게 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샬롬. 2025.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