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학창시절, 영어 시간에 매우 감동적인 글을 대하게 되었습니다. 헬렌 켈러의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이라는 에세이였습니다. 헬렌 켈러는 태어날 때부터 듣도 보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삼중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신에게 있는 무서운 장애를 극복하고 쓴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이라는 글은 대략적으로 이런 내용입니다. “최근에 한 친구가 숲속을 오래 산책한 후, 나를 찾아왔기에, ‘숲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이 간단했습니다. ‘Nothing particular. 특별한 것은 없었어요.’ 어떻게 한 시간이나 숲 속을 걷고서도 특별히 관심 가질 만한 것을 찾지 못할 수 있을까요? 보지 못하는 나는 그저 만지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것을 수백 가지나 찾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글에서, ‘내가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을 이야기합니다. “첫날에는 나를 가르쳐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날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터오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겠습니다. 셋째날엔 아침 일찍 큰 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어요. 점심 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 때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우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집에 돌아와 3일동안 눈을 뜨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1년간 코로나로 인해 온 세상이 고통을 당할 때, 우리는 서로 만나 밥먹고 이야기하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조건이었는지를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뭔가를 잃어보기 전에는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눈과 귀를 갖고 있기에, 우리는 당연한 줄로만 알고 삽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눈과 귀는, 누군가에겐,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절실하게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그런, 소중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창조물에는 창조주의 귀한 섭리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들을 위해, 듣는 귀와 보는 눈을 만들어 주신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듣는 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는 눈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라는 뜻입니다. 그 때, 우리 인생은 생명으로 풍성하게 넘치는 복된 삶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태초의 인간들인 아담과 하와는, 듣는 귀와 보는 눈을 잘못 사용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대신, ‘선악과를 따먹으라’는 사단의 말을 듣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대신’에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세상 쾌락’을 바라보았습니다. 눈과 귀가 창조의 목적을 벗어나, 오용되었을 때, 인간은 어두워졌습니다. 눈은 보아도 알지 못하고, 귀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영적인 맹인과 청각 장애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한 시간동안, 눈 뜨고 귀 열고 숲속을 거닐며 산책해도, “nothing particular!” 아무 특별한 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따라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전혀없는, 무감각한 사람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영적 장애로 삼중고를 겪는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의 장애가 고침받게 해 주셨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장애인 아닌 장애인처럼 모든 생활이 불편해졌지만,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오히려 오직 주님의 크신 은혜로 우리의 영적인 장애가 치유되었습니다. 우리의 눈과 귀가 새로워져서 평범했던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조건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상속에서 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눈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입을 열어 찬양하며 매사에 감사로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21.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