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죽음’이란 단어는 오랫동안 금기어였습니다. 할머니들은 옛날에 늘 ‘늙으면 빨리죽어야지’라는 식의 말을 입에 달고 사셨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그 말을 손자가 새겨듣고, “두손 모으고 우리 할머니 소원을 들어주세요”라고 기도하면 안됩니다. 할머니가 죽어야지 하는 말은 ‘좀 더 오래 살겠다’는 말이지, 진짜 죽겠다는 말씀이 아니기때문입니다. 죽음이란 단어는 자기가 자신에게 적용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말이지, 다른 사람이 말하면 안되는 매우 불경한 단어였습니다. 한국인들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를 꺼려합니다. 죽을 사자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숫자는 4입니다. 건물 엘리베이터에도 4층이라는 표기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기피하는 문화는 기독교 문화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죽음을 기피하는 문화는 유교문화 불교문화입니다. ‘아이고 아이고~, 죽으면 끝’인 사망의 종교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죽음입니다.
그러나, 예수 신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원래 예수 신앙은 늘 죽음을 말합니다. ‘예수와 함께 나 죽었으니..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우리는 늘 죽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매달 한 번씩 거행하는 성찬식은 ‘주님의 죽으심을 그분이 다시 오실 때까지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중세기 기독교 수도사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메멘토 모리’라고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늘 인생의 마지막인 죽음을 기억하는 삶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 보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수용하면, 우울해지고 허무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입니다. 죽음을 생각할 때, 현재를 더 충실하게 살게 됩니다. 오늘 보는 이 아름다운 세상이 내가 이생에서 보는 마지막 광경이라면, 느껴지는 감동이 다를 것입니다. 한 순간도 허투르 보내지 않고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또, 죽음을 생각하면 싸울 일도 없습니다. 부부간의 갈등, 형제간의 갈등, 죽음앞에선 모두다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됩니다. 싸우게 되어도 곧바로 화해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음을 너무 늦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을 제대로 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생각하면, 오늘을 보람있게 보낼 수 있습니다. 지혜는 늘 마지막을 생각하며 오늘을 신실하게 사는 자세입니다.
오늘은 12월 3일입니다. 벌써 2017년 마지막 달도, 3일이 지났습니다. 저는 우리 생애에다시는 오지 않을 2017년을 생각하면서, 남은 한 달을 주님을 위해 충성되이 사용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만, 유종의 미, 끝이 좋아야 다 좋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간에, 제대로 하지 못했던 QT 말씀묵상, 기도, 봉사, 예배, 선교가 있었다면 ‘메멘토 모리’ 마치 이제 죽음을 앞에두고 사는 사람처럼,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은 한 달,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 그 어느 때보다 풍성히 결실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17.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