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회의가 많아지면, 신앙에 ‘회의’가 들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회의가 든다고 서로 모여서, 의견을 나누고 모으지 않으면, 공동체는 누군가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움직이게 되어 서로 불통으로 고통받게 되고, 당연히 건강한 성장을 이룰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회의는 꼭 필요한데, 어떻게 건설적인 회의를 할 수 있을까요? 미국 미네소타 아동 병원은 조직내 ‘비난 문화’가 만연했다 합니다. 병원은 자칫 의료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 많아서, 사소한 실수라도 생기면 잘잘못을 따지느라, 부서간 대립이 심해지는 것입니다. 서로를 비난하고, 비판하고 책임을 미루느라, 분위기가 위험 수위가 되었습니다. 그 때, 저들이 이런 험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했던 일이 ‘단어 바꾸기’였습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비슷한 의미라고 하더라도 단어를 바꾸어 표현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오류’, ‘조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면, 이제는 오류대신에 ‘우연한 실수’ 그리고 ‘조사’ 대신에 ‘분석’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당신의 오류를 조사하겠다는 말보다는 ‘당신의 우연한 실수를 분석해 보겠습니다’라는 말이 훨씬 긍정적이고, 듣기에 은혜로웠습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지속적인 노력끝에, 드디어, 조금씩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타인의 실수에 서로 관대해졌고, 비난하는 문화가 사라지자, 환자에게도 정성을 쏟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교회 생활, 신앙생활은 인간관계입니다. 때로 주일 성수, 봉사활동 등 신앙생활에 열심있는 분들가운데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인간관계입니다. 예전에 아주 존경했던, 선교사님께 어떻게 관계를 잘 할 수 있는지를 물었을 때, 뜻밖의 대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꼭 말을 할 때, 끝 마무리를 ‘이렇게 해야 합니다, 저렇게 해야 합니다, 그건 잘못이라고 봅니다, 저는 반대입니다’라는 표현보다는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런 방법은 어떠신가요?” ‘항상 이렇다, 저렇다, 이래야 된다, 저래야 합니다’라는 단정적인 말보다, 상대방을 존중하며 여지를 남겨두는 말을 하면, 관계가 부드러워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말을 은혜롭게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요, 또한 신앙심이 깊은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이래서는 안됩니다, 우리교회는 문제가 많습니다. 성전건축이 좌절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한 일이 없습니다, 장로님들이 본이 되지 않습니다, 목사님의 리더십에 한계가 온 것 같습니다”라는 표현보다는, ‘우리 교회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새로운 성전을 주님이 예비하셨습니다, 장로님들과 담임목사님은 장점이 많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약함을 감당하면 더욱 놀라운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라는 말이 늘 은혜로운 것입니다.
말은 딱 들어보면, 은혜가 되는 말이 있고, 은혜가 되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덕을 세우기 위해,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라”고 했습니다. 이 거칠고 메마르고 상처많은 세상을 복된 말씀으로 치유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성탄의 계절에 늘 선한 말로 피차 듣는 분들께 은혜를 끼쳐, 세상을 치유하는 ‘복된 소리’로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15.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