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즉필생
The seeker of death shall live

대한민국 광화문 광장에 동상이 새겨진 이순신 장군은 모름지기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나라 멸망의 위기에서 민족을 구한 영웅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1597년 9월 벌어진 명량대첩에서, 고작 13척의 배로 그 10배에 해당하는 133척의 왜적선을 상대로, 세계 해전사에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기적 같은 승전을 이루어냈습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절대 열세였던 잰쟁을 승리로 이끈 비결은 명량 대첩에 참전하기 전에 그가 자기 병사들에게 했던 말 안에 담겨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을 앞두고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병법에 이르기를 생즉필사 사즉필생이라고 했다. 한 명이 좁은 길목을 지키면 천 명을 당해낼 수 있다. 너희들은 살려는 마음을 먹지 말라. 조금이라도 군령을 어기면 군율로 엄히 다스릴 것이다!” “생즉팔사, 사즉필생”이라는 말은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뜻입니다. 죽음을 염두에 두고, 오늘 내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려고 하면, 오히려 언제나 사는 길을 찾을 수 있지만,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살 궁리만 하면, 오늘 내게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오히려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로마 제국이 번성할 때, 로마는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 행진을 벌였습니다. 그 그렇게 승전한 장수들이 개선행진을 할 때에, 로마에는 군중들이 ‘메멘토 모리’를 외치는 특별한 전통이 있었다고 합니다. 메멘토 모리는 Remember the death-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입니다. 이 말은, 오늘 승전한 장군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정상에서도 겸손을 잃지 말고, 늘 자세를 낮추어 모든 일에 성심을 다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쓰이던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이 말이 ‘늘 죽음을 의식하면서, 오늘 주어진 시간을 귀하게 사용하라는 뜻’으로 확대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사실, 50년에 후에 죽을 것을 생각하는 사람과, 30분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현재 바로 이 순간을 대하는 태도가 같을 수 없습니다. 평생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살 때에는 보이지 않았던 인생의 참된 의미가, ‘사즉필생’ 죽음앞에서면 때로 선명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죽음을 염두에 둘 때 우리는 오늘 현재를 살면서 해야 할 정말 중요한 일들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깨닫게도 합니다.

팔십 평생, 자기 고집대로만 살다가, 위암으로 죽음을 앞두신 분이 계셨습니다. 한 때 지방 유지였고, 부인은 그 지역 병원의 간호과장을 지냈고, 큰 딸은 대학 간호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분이셨습니다. 대신에 작은 딸은, 선교사와 결혼해서, 고생하며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늘 작은 딸과 그 사위가 불만이었습니다. 도대체 처자식 하나 제대로 먹여 살릴 줄도 모르는 사위가 무슨 인류를 위해 좋은 일 한다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자기 귀한 딸을 고생시키는 것 같아서 아주 못 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늘 만날 때마다 언짢은 얼굴로 이야기하면, 딸과 사위는 웃으면서, ‘이게 의미있는 일이고 또 우리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행복하다’고 답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아버지는 애들이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죽음을 앞에 두고 보니, 그 아이들이 어쩌면 가장 멋지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고백했습니다. 평생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살 때에는 잘 보이지 않던 인생의 참된 의미가 죽음앞에서는 때로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살면서 내가 해야 할 정말 중요한 일들인 무엇인지, 뼈저리게 깨닫게도 됩니다. 그러므로 늘 사즉필생,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여, 오늘 내가 해야 할 가장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들을 행함으로, 참으로 멋지고 행복한 삶을 누리며 주님앞에 그 어떤 후회도 없이 이르는 우리 모두 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22.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