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은 유독 꽃가루 알러지가 심한 것 같습니다. 제 자신도 고통을 겪고 있지만, 제 주변을 살펴 보니, 이번 알러지로 인해, ‘응급실’에 다녀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 한국에서 신학 대학원에 다닐 때, 처음으로 ‘알러지’라는 단어를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수십년 생활하신 미국 시민권이 있는 구약학 교수님이셨는데, 봄만 돌아오면, 우리는 거의 모두 멀쩡했는데, 그분은 기침과 콧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봄에 겨울 감기가 참 오래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분은 우리로서는 처음듣는 단어인 ‘알러지’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 한국 사람들은 모두 일본식 발음인 ‘알레르기’라고 말했었고, 그 알래르기는 봄에 터져나오는 기침과 콧물이 아니라, 그저 ‘알래르기 반응을 일으킨다’고 말할 때의 ‘알래르기’였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미국 시민권자이셨던 그 교수님의 ‘알러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미국에 온지 약 3년이 되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기침과 콧물현상이 제게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단언컨대, 제가 한국에 있었을 때, 추운 겨울에 걸리는 감기 이외에 제가 기침하고 콧물을 흘린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따뜻한 봄에, 때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시도 때도 없이 마른 기침과 함께 재채기가 터져나오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알러지’라는 단어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건 ‘알래르기’가 아니라, ‘알러지’였습니다. 도대체 왜 알러지가 미국같이 좋은 나라에서 이렇게 기승을 부리는 것일까요? 빈민국들에 선교를 다녀보면, 한결같이 별로 ‘알러지’가 없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들은 그저 봄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개도 기침하지 않고, 그러다가 겨울에는 감기에 걸립니다. 꽃가루가 하얗게 ‘눈송이처럼’ 날려도 그저 반응이 평범합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지 자연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언젠가 어떤 수의학자가 ‘알러지’에 대해서 쓴 칼럼이 생각이 납니다. 그분은 너무 깨끗한 환경이 어쩌면 우리 몸의 면역력을 떨어뜨려서, 몸을 작은 먼지에도 너무 민감하게 반응케 했다고 말했습니다. 몸은 작용, 반작용의 원리에 따라, 외부의 침입에 스스로 방어하는 면역력을 자연스럽게 키우게 되는데, 지나치게 깨끗한 물과 공기, 그리고 깨끗한 음식등이 몸을 외부의 공격에 취약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수의학자는 약간 더러운 환경에서 살아 몸에 ‘기생충’이 있는 사람은 보통 ‘알러지’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신앙생활에도 알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작은 일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입니다. 다른 사람의 결점을 잘 참아주지 못하고, 별 말이 아닌데도 너무 쉽게 상처받습니다. 온실속에서 자랐기 때문인가요? 그러나 성경은 ‘환난은 우리 인격의 면역을 키워, 소망을 이룬다’고 말씀했습니다. 육체적인 알러지도 정말 괴로운데, 신앙생활의 알러지까지 겹친다면, 정말 사는게 힘들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정말 기생충이라도 하나 키워야 할 듯 싶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