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사회는 분노나 화를 억누리지 못해, 충동조절장애로 고통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거나 혹은 마음 이 불편해지면, 상대를 폭행하거나 불을 지르는 식으로 화를 풀어 죄를 짓는 것입니다. 폭력범죄 10건중 4건이 홧김에 저지른 범죄라고 합니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층간 소음으로 갈등하던 30대 젊은이가 윗집 노부부에게 흉기를 휘둘러 할머니가 숨졌는데, 이유는 ‘두 차례 층간 소음을 항의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아,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았다’라는 것입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억울함은 인간이 가 장 견디지 못하는 감정’이라고 합니다. 그 감정으로 다른 사람을 겨누면 미움과 살인이 되고, 자신을 겨누면 절망과 심하면 자살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도 유익이 없습니다. 수년 전 서울의 한 식당 주인이 온 몸에 신나를 뿌리고 분신자살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자살이 아니었습니다. 그 식당 주인은 불과 10미터 거리를 둔 다른 식당 주인과 사업상 갈등을 빚다가 억울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온 몸에 신나를 뿌리고 항의하던중, 자신이 피우고 있던 담배불이 옮겨붙 어, 불과 40대 후반의 나이에 어린 아들을 두고 죽게 된 것입니다. 이 분노로 인해, 승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죽은 식당 주인의 집은 초상집이 되었고, 죽은 식당 주 인과 갈등을 빚었던 식당은 사람 죽인 단초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죄인이 되었고, 식당 주인이 불에 타서 죽을 때, 그 뜨거움을 못이겨 근처 횟집 수족관에 몸을 던 지는 바람에, 수족관이 망가져 횟집도 큰 손실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번엔 횟집 주 인이 억울하고 분하게 되었습니다. 서로간의 갈등과 분쟁, 그리고 억울함과 분노는 평 화로운 거리를 파괴와 죽음의 거리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참을 수 없 는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가 적지 않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한 번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향해 가실 때, 사마리아 땅을 지나게 되었습니 다. 장거리 여행중이어서, 사마리아의 한 고을에서 머물러 쉬기를 원하셨는데, 뜻 밖에도 그 고을에서 예수님 일행이 예루살렘 성을 향해 간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 일행을 거절한 것입니다. 원래, 사마리아 사람들과 예루살렘 유대인들은 서로 상 종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마리아인들의 태도 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분노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아무런 원한이 없으셨고, 오히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분이셨습니다. 그렇게 사 마리아 사람들을 위해 사신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마리아인들의 처사가 옳지 않다 는 생각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분노했고, 그대로 지나가면 안된다고 판단했습니 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몇 몇은,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들을 멸하라’고 저주하기를 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저들의 기대와 상반된 반응을 보이 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처사에 분노하여 사마리아인들을 저주하려 한 제자들을 꾸짖어 말리셨습니다. 그리고 평화로이 다른 동네로 걸음을 옮기셨습니 다. 성경은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의 행위 를 본받아 네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까 두려움이니라.” (잠 22:24-25절)고 말씀했습 니다. 노를 품은 자를 가까이하면, 마치 불에 손을 대는 것처럼, 계속해서 심령이 다치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그 행위를 본받아 영혼이 올무에 빠질 수 있습니다. 화를 낸 사람도, 그 분노에 반응한 사람도, 그 분노에 연결된 모든 사람 들도 다 파괴와 죽음을 겪게 됩니다. 올해 표어는 ‘내가 매일 기쁘게’입니다. 매일 기쁨을 누리려면 분노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분노를 다스리 려면, ‘언제나 쿨하신’ 주님과 함께 동행해야 합니다. 주님과 늘 함께 동행하심으 로, 분노의 감정을 이기고,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승리의 삶을 누리는 저와 여 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20.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