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A 교단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한국 기독교계에는 알려지지 않은 신앙의 많은 영웅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중에 로버트 제프리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많은 심각한 건강 문제들과 여러가지 사업상의 일들로 인해 친지들이 토론토에 머물러 살라고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기회와 비교적 쉬운 삶을 뒤로 한 채, C&MA 개척 선교사로 헌신하셨습니다. 1897년 그는 모국을 떠나, 중국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으면서, 광동어를 마스터하고, 후에 중국 선교사 전체를 이끄는 리더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역을 잘하던 제프리 선교사는 1911년 다시 새로운 얼라이언스 선교 필드인 베트남에 부름을 받고 익숙한 지역인 중국을 떠나 베트남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중국에는 여전히 많은 일들이 남아 있었지만, 여러 선교사님들이 일하고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새로운 미전도 지역을 바라보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처음은 매우 미약하게 단 한명의 선교사로 시작된 베트남 선교가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오늘날, 풍성하게 열매를 맺어 무려 성도수 백만명이 넘는 C&MA 교회들이 베트남에 세워진 것입니다. 이 숫자는 미국내 전체 C&MA 교인 숫자의 2배 이상입니다. 그러나 제프리 선교사님의 헌신은 베트남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1928년, 교단 이사회에서 재정부족 이유로, 새로운 선교 필드를 개척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했을 때, 제프리 선교사님은 인도네시아에 새로운 선교 필드를 또 개척하셨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선교 사역을 마쳤고, 그리고 그의 목숨도 잃었습니다.
당시는 세계 제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는데, 일본 점령지에서 캐나다 국적의 선교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런지 뻔히 알면서도 그는 안식년을 마치고, 인도네시아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예상했던대로 선교사님은 그곳에서 일본군에게 잡혀, 전쟁이 끝나기 몇 주전인 1945년 7월, 일본 포로수용소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제프리 선교사님의 헌신으로 뿌려진 그 처음에는 보잘 것없던 씨앗이 오늘날 역시 풍성히 결실을 맺어 현재 인도네시아에 있는 인도네시아 C&MA 교회들은 베트남에 있는 베트남 C&MA 교회들처럼, 미국내의 C&MA 교회들보다 교세가 훨씬 큽니다.
그러나 제프리 선교사님이 교단 이사회의 지시에 반하여, 인도네시아에 선교 필드를 개척하려고 했을 때, 그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설명한 글의 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지금 제 마음에 이런 음성이 들립니다.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양들이 있다. 그들도 또한 내가 데려와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나를 위해 갈꼬? 누가 복음을 들고 사마린다와 발릭 파판에 가겠는가? 그리스도의 이름이 그곳에는 아직 전파되지 않았다.’” 제프리선교사님은 확실히 이해했습니다.
그분은 ‘잃어버린 영혼을 하나님께서는 늘 생각하시며, 그들이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Lost people matter to God. He wants them found!)는 핵심 가치를 위해 살다가 죽었던 것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하나님께서는 늘 생각하십니다 (Lost people matter to God). 그리고 하늘 아버지는 그 영혼들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He wants them found!).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코자 하는 하늘 아버지의 마음이 얼라이언스의 핵심가치(core value)입니다. 그 핵심가치를 따라 ‘한 영혼을 주께로’ 구원하는 일에 온전히 쓰임받는 저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15.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