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특이한 제목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2003년 작품인데, 애인을 두 번 뺏기는 청년의 파란만장한 로맨스를 그린 영화입니다. 주인공 대학원생은 유능한 잡지사 편집장에게 자신의 애인을 빼앗기지만, 그의 성공적인 삶을 부러워하고 질투합니다. 남을 부러워하는 그의 질투심은 그의 인생을 방황하게 만듭니다. 부러운 사람처럼 살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자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듯 살아가면서, 그 안에서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합니다. 영화 자체가 매우 우울하고 찌질하고, 답답하고, 헤매이는 내용입니다. 사실,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영화 제목은, 기형도 시인의 시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영화 내용도, 그 맥락이 정확히 그 시 내용과 일치합니다.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 내용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 보았으니/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이 시의 의미는 나이가 지긋하게 든 후에, 과거의 삶을 돌아본 시인이, 뭔가를 바라고 달려온 그 힘이, 남에 대한 시기와 질투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한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수우미양가, 123등과 같이 늘 서로 경쟁하는 사회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내가 뭘 잘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고, 늘 무엇이나, 남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전교 일등을 하려면, 국산사자만 잘해서는 안되고, 체육, 미술, 음악까지 잘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늘 성공한 인물들을 우상으로 세워놓고, 그의 삶을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나도 그와 같이 성공하고 싶다는 강박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며 살아갔습니다. 사람들의 성공에 대한 욕구는 모두 남에 대한 부러움과 시기, 질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질투는 사람들의 희망이었고, 힘이었습니다. 그런데 남을 시기, 질투하는 사람은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의 존재감은 자연히 제로가 됩니다. 남을 시기 질투하는 만큼, 또한 자기 가치를 모르고, 남처럼 되고 싶어하는 만큼, 그의 인생은 무의미해지고, 헤매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형도 시인이 쓴,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의 마지막 소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숨이 멎을 정도로, 인생의 정곡을 찌르는 멋진 싯구입니다.
남의 인생을 부러워하고 시기 질투하는 것을 자기 인생 동력과 희망으로 삼아 사는 사람은, 결국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남부러워 남쫒아서만 살면 자기 인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질투하는 자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인생을 하찮게 여기게 되고, 함부로 대하게 되기 때문에 결코 행복하게 살 수 없습니다. 코롤라 새차를 사고 기뻐하다가도 남이 렉서스를 타는 걸 보면, 그 모든 기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한 번도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 못나고 어리석은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이 세상 유일한 존재로 귀하게 창조하셨습니다. 나 같은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뿐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를 위해, 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부러워하지 말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아, 늘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며, 각자 믿음의 분량대로,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기 인생을 주님이 나를 사랑하듯 귀하게 여겨 당당하게 주의 영광을 위해 멋진 삶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22.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