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결혼을 미루다가 혼기를 놓친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공부 잘해서 먼저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을 우선으로 두고 노력하다 보니 어느 새, 회사에서 인정받아 많은 수입을 올리는 인사가 되었는데, 배우자 만나기가 어려워져 결혼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고, 가족들조차 변변히 서로 얼굴 보는 일이 힘들어진다는 얘기였습니다. 돈은 버는데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모두 망각한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라는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리 자녀들의 모습이 어쩌면 우리 부모들의 잘못된 가정교육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훌륭한 자녀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부모라는 환경안에서 맺히는 열매입니다. 민족의 영웅중 한 사람인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는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맘 먹지 말고 죽으라.’ 안중근 의사는 ‘그 어머니에 그 자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완전히 다른 의미에서 ‘그 어미에 그 자식’이 많은 듯 싶습니다.
작년 쯤에 10살 소녀가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엄마를 씹어 먹어”라는 내용의 일명 ‘잔혹동시’를 써서, 세상을 발칵 뒤집었었습니다. 그 내용이 입에 담기에도 너무나 엽기적이고 패륜이라서, 사회적 반발이 극심해지자 결국 그 동시를 출판했던 출판사는 시집 전체를 폐기처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부산에 있는 한 초등학교 1학년생의 ‘여덟살의 꿈’이라는 동시도 역시 어른이 보기에는 부담스럽습니다. “나는 –초등학교를 나와서/ 국제중학교를 나와서/ 민사고를 나와서/ 하버드대를 갈 거다./ 그래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정말 하고 싶은/ 미용사가 될 거다.” 아이들이 쓰는 동시는 아이들의 마음을 그대로 투영해주는데, 우리 한국 어린이들의 마음이 표현된 동시들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모두 어둡고 힘들게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자기 꿈이 아니라, 부모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학원으로 등 떠밀려 하기 싫은 공부를 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잔혹한 내용의 동시와 꿈을 잃고 방황하는 아이들의 동시들은, 우리 한국 사회의 가정 교육과 자녀 양육의 방향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심은대로 거둔다고 말씀했습니다. 민족의 영웅으로 자라던지, ‘동시’라고 말하기에도 끔찍한 글을 써대는 무서운 아이들로 자라는지는 모두 오늘 우리들이 어떻게 우리 자녀들을 양육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성경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 6:4절)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후에 돈만 아는 빼꼼이가 되어 이기적인 욕심에 붙들려 방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부모가 먼저 말과 행동에서 본을 보이며 말씀안에 잘 양육하여 이 시대를 밝히는 ‘빛과 소금’이 되도록 애써야 할 것입니다. 샬롬. 2016.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