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어느 교회에서 부흥 강사님을 모시고, 부흥집회를 열었습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은혜를 엄청 받았습니다. 그런데 부흥회 3일째 되는 날, 장로님 부인이신 권사님이 교회에 이부자리를 갖고 오셨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는데, 권사님 하시는 말씀이, ‘자기 남편이 교회안에서는 성자인데, 교회당 밖에서는 너무나 달라서, 그냥 앞으로는 교회당 안에서 살려고 이부자리를 갖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교회당 안에서의 모습과 교회당 밖에서의 모습이 다른 분이 적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지순례를 다녀보면, 옛 유적지에 신전들이 적지 않았음으로 보게 됩니다. 이집트, 요르단, 터키, 그리스, 로마 등지에, 모두가 다 볼 수 있는 그런 탁 트인 장소에 과거 신들을 모셨던, 거대한 신전들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영험하다고 생각되는 신들을 예배하기 위해 신전에 나아갔습니다. 그 신들에게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제우스, 헤르메스, 하데스, 헤라, 포세이돈, 아폴로, 아테나 에로스, 아프로디테, 다이아나, 등등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만든 신전에 이 신들을 깍아서 만들어 모셔 놓고, 그 신들을 섬겼습니다. 세상 모든 신들은 각각 이름이 있었고, 하는 일들이 서로 조금씩 달랐습니다. 그런데,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은, 이름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을 전능자, 엘 샤다이 (el shadai)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출애굽 당시,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여쭈어 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알려 주신 이름이, ‘스스로 있는 자’ ‘야훼- 여호와’였습니다. 야훼라는 단어는 ‘항상 살아계시며,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히브리 말입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살아계시고, 홀로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사실, 신전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계신지 그렇지 않은지, 늘 불안해했고,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통해서 허락하신, 일종의 신전이, 성막입니다. 성막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게 하는 성스러운 장소였습니다. 이 성막은 이방 신전처럼 어떤 한 곳에 고정된 장소가 아니라, 늘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움직였습니다. 그러다가 다윗 왕 때에,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할 생각을 하게 되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하나님을 위해 아름답고 화려한 성전을 짓게 됩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소가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성전은 하나님을 가두는 감옥처럼 되었습니다. 성전이 없었을 때에, 사람들은 항상 살아계시며 스스로 존재하시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언제 어디서나 예배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사를 갈 때마다, 바로 그 장소에서 하나님을 예배했고, 야곱도 베델에서 하나님을 예배했고, 요셉은, 애굽 땅에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이 생기고부터, 사람들은, 성전에서의 삶과 성전 밖에서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성전안에서는 그렇게 거룩할 수가 없는데, 성전 밖에서는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과 별 차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전안에서는, 거룩하고 사랑많고, 친절하고, 따뜻한데, 성전 밖에만 나가면, 차갑고, 냉정하고, 화 잘 내고, 미움과 질투가 많고, 지저분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성전을 허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주님이 임재하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 땅에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은 언제 어디나 계신 무소부재하시는 하나님이시요, 그래서 신앙생활은 성전안에서뿐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전반에서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앞에서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올 한 해,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주님을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22.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