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갑자기 얻은 자유에 한국 백성들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남북한이 미국과 소련에 의해 신탁통치를 받게 됩니다. 그 다음에 묘한 일이 벌어집니다. 미국과 손잡은 남한 정치인들은 일제 시대때 일본에 영합하여, 독립운동가들을 핍박하고 매국 행위를 일삼았던 사람들을 흡수하게 됩니다. 단죄를 받아 마땅한 일본 앞잡이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그대로, 남한 정부 요직 인사들로 탈바꿈하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독립 운동가 출신들은 대다수 북한 공산주의에 흡수됩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였기에 6.25 한국전쟁 당시, 민주주의 공산주의 이념을 넘어서서 남한은 사상적으로 북한의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부패한 남한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할 리가 없었습니다. 자신들은 미리 한강 이남으로 도망친 후, 한강 다리를 끊고, 북한 탱크가 코 앞에 다가올 때까지도, ‘국민 여러분, 우리국군이 나라를 잘 지키고 있기에, 안심하십시오.’라는 말도 안되는 가짜 방송으로, 서울 시민들의 피난길을 막았습니다. 대통령의 말만 믿고 제때에 피난가지 못한 수많은 백성들이 마치 세월호 안에 갇혀서 어른들 말만 믿다가 죽어간 학생들처럼, 끊어진 한강다리 앞에서 죽었습니다. 뿌리깊은 방산 비리, 어제 오늘일이 아닙니다. 군수물자는 위에서부터 이리 떼먹고 저리 떼먹어, 부패한 남한 군인들이 잘 훈련된 공산군의 적수가 될 수 없었습니다. 공산군은 파죽지세로 남한 땅을 점령했고, 낙동강 전선을 남기고 민주주의는 바람앞의 등불처럼 거의 꺼질 위기였습니다.
‘오호라, 우리는 곤고한 백성이었습니다. 누가 우리 민족을 그 사망의 늪에서 구원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유엔군이 남한을
도와 한국 전쟁에 참전하게 된 것입니다. 원래 유엔 상임이사국 가운데 소련이 있어서, 만장일치로 움직이는 유엔군은 소련이 반대했다면, 한국전 참전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6.25 전쟁 바로 직전에, 소련이 중국 공산당 유엔 참가 문제로 인해 미국과 사이가 나빠져, 한국 전쟁에 유엔군을 파병하자는 그 중요한 안건이 달린 회의에 불참하게 되면서, 안보리에서 뜻밖에 만장일치로 유엔군 파병이 결정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남한이 운이 좋았다고 말하겠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유엔군의 참전과 함께 전세는 역전되었고, 인천상륙작전, 1.4후퇴후에, 오늘날과 같은 휴전선이 만들어지면서,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휴전협정의 자리에, 남한 대표가 없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휴전 협정문에는 당시 UN군 총사령관 클라크와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가 서명했습니다. 그 때 남한 대표인 이승만 대통령은 통일을 주장하며 끝까지 서명하지 않아 한국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과거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놀라운 사실은 전쟁도, 승리도, 휴전도 우리 남한 사람들의 공로가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다 유엔군이 도왔고, 미군이 도왔고, 다른 사람들이 휴전해서, 오늘날 반쪽이나마 자유 민주국가로 보존된 것입니다. 그저 멸망 당하지 않은 것이 기적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아무 것도 내세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전쟁 정전 감사주일인 오늘,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일은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입니다. 샬롬. 2018.07.22.